[인문사회]‘코코 샤넬’…그윽한 향기로 세상을 휘감다

  • 입력 2005년 4월 22일 17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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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코코 샤넬. 집무실 입구에 ‘마드무아젤’이라고 쓰인 황동 명패를 내걸었던 그녀는 자신과 닮은 검은 머리에 가냘픈 몸매의 모델만을 기용했다. 사진 제공 솔
중년의 코코 샤넬. 집무실 입구에 ‘마드무아젤’이라고 쓰인 황동 명패를 내걸었던 그녀는 자신과 닮은 검은 머리에 가냘픈 몸매의 모델만을 기용했다. 사진 제공 솔
◇코코 샤넬/카타리나 칠코프스키 지음·유영미 옮김/360쪽·1만5000원·솔

메릴린 먼로는 할리우드의 찬란한 태양이던 시절 “오늘 밤 무슨 옷을 입고 잘 거냐”는 질문에 “샤넬 넘버 5”라고 말했다. 먼로를 비롯한 뭇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독특한 향수를 내놓았던 가브리엘 샤넬(1883∼1971) 본인은 ‘샤넬 넘버 1’을 애용했다. 오로지 자신만이 쓰기 위해 만들었던 향수였다. 그녀는 평생 자신만의 개성에 자부심을 느꼈고, “내가 곧 스타일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했던 사실을 흉내낸 것이었다. 샤넬은 20세기 세계 패션계의 군주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여제(女帝)의 출생은 초라했다. 프랑스의 시골 마을 소뮈르의 가난한 처녀와 장돌뱅이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학비가 면제되는 수녀원 부설 학교에서 고아처럼 자랐고 옷 수선 여공으로, 밤무대 여가수로 전전했다. 샤넬의 초년 인생은 이렇듯 볼품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카페에서 불렀던 노래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의 ‘코코’는 디자이너가 된 뒤에도 그녀의 애칭이 됐으며 그 약자인 ‘두 개의 C’자 모양 로고는 세계 제일의 패션을 보증하는 수표가 됐다. 파리의 프리랜서 작가가 쓴 이 책은 그처럼 비약적 성공을 거둔 한 야심만만한 여성의 빛나는 야망과 화려했던 사교생활, 운명적으로 나눴던 사랑들과 가슴 아픈 파국들에 대해 쓴 평전이다.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며, 선명한 이미지의 문장들은 정열적이고 감각적이다.

샤넬의 애칭 ‘코코’를 뜻하는 C자 두 개로 만든 로고(사진 위). 향수 ‘샤넬 넘버 5’를 바르고 있는 메릴린 먼로. 샤넬은 ‘5’라는 숫자의 모양을 마음에 들어 했고, ‘5’는 자신을 상징하는 숫자라고도 생각했다. 사진 제공 솔

스물다섯 살 시절의 샤넬은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프랑스 부호 에티엔 발장의 정부가 됐다. 그의 돈으로 파리에 모자점을 냈고, 진정한 의미의 첫 애인이었던 영국 부호 보이 카펠의 도움으로 의류업계에서 도약하기 시작했다.

샤넬은 제1차 세계대전의 두려움에 떠는 상류층 여성들에게 자기 부티크를 열린 공간으로 제공했다. 부티크 종업원들로 귀족이나 최상류층 출신 아가씨들을 채용했다. 샤넬은 시대정신과 조화를 이룬 개성, 심플하면서도 실용적인 패션감각,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바느질, 우아해지려는 여성들의 허영심을 은근히 자극하는 영민함을 무기로 삼았다.

“‘샤넬 넘버 5’는 러시아 출신 화학자의 아들 에르네스트 보로가 만든 향수다. 마흔 살의 샤넬에게 그를 소개시켜준 사람은 샤넬보다 열한 살 연하의 연인이었던 러시아 망명 귀족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大公)이었다. 파블로비치는 로마노프 왕조의 간신 라스푸틴 암살에 가담한 이였다. 샤넬은 음울한 그에게 모성애에 가까운 애정을 베풀었는데, 파블로비치는 그들의 사랑이 종말로 다가갈 무렵 ‘선물 삼아’ 향수 제조업자 보로를 소개시켜줬던 것이다.”

그녀는 진정한 예술가를 알아보는 눈매, 예술가들을 위해 큰돈을 아낌없이 ‘내지르는’ 배포, 두려움 없이 새로운 사랑에 삶을 내맡기는 분방함도 지니고 있었다.

“피카소, 달리, 스트라빈스키, 장 콕토부터 그레타 가르보, 마를레네 디트리히까지 그녀의 친구 명단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샤넬은 롤스로이스 자동차 열여덟 대를 갖고 있었던 1930년대 영국 제일의 부자 웨스트민스터 경과 오랜 사랑을 나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남자를 애인으로 두었다는 이유로 종전 후 처벌을 받을 뻔했는데 ‘영국인 친구 윈스턴 처칠’이 전화를 걸어주자 모든 문제가 다 풀려버렸다.”

거짓말까지 해가며 자기 과거사를 화사하게 채색하는 공명심과 문학적 화술도 샤넬의 빠뜨릴 수 없는 개성이었다. 어쩌면 이 평전의 화려한 문체는 상당 부분 샤넬의 이 같은 개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혼자 살던 파리 리츠호텔에서 숨을 거두던 마지막 순간에도 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의 귀염둥이, 이제 죽음이군.”

원제는 ‘Coco Chanel’(1999년).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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