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주 여사 독립만세 시위 주도… 仁村선생 부인

  • 입력 2005년 2월 23일 01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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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독립유공자(대통령 표창)로 확정 발표된 이아주(李娥珠·1899∼1968·사진) 여사는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된 뒤 재판에서도 끝까지 굴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이다.

이 여사는 동아일보 사장과 중앙학교·보성전문 교장을 지낸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부인이기도 하다. 국가보훈처 포상 신청 당시 여사의 이름을 이아수(李娥洙)로 잘못 표기했다고 유족 측은 밝히고 있다.

이 여사는 정신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당시 20세) 3월 5일 서울 남대문역 앞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경에 체포됐다. 이 여사는 혹독한 경찰 조사 때는 물론 공판 과정에서도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면 관대히 처분하겠다”는 재판관의 회유를 일축한 채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다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이 여사는 “정숙한 이 내 몸에 포박이 웬 말인가. 청춘의 끓는 피 참기 어려워 울음이 목맺히도다”는 옥중 시로 세인의 가슴을 울리기도 했다(동아일보 1920년 4월 20일자 3면).

인촌 선생은 일본 도쿄유학생 시절부터 친했던 김우영(金雨英) 변호사의 첫 변론을 지켜보러 나왔다가 당당하고 정연하게 진술하는 이 여사의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부인과 사별했던 인촌 선생과 이 여사는 1921년 1월 결혼했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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