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앗! 아인슈타인이 살아있었네

  • 입력 2005년 1월 20일 15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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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stein, Albert
Einstein, Albert
《올해는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 등 3가지 획기적 이론을 발표해 과학사에서 ‘기적의 해’라 불리는 1905년에서 꼭 100년 되는 해.

그래서 ‘세계 물리의 해’다.

전 세계적으로 빛 신호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빛의 축제’ 등 각종 행사가 열리고 7월부터 국립서울과학관에서도 아인슈타인 전시회가 마련된다.

아인슈타인이 죽은 지도 50년.

나를 비롯해 그의 이론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사실 별 관심도 없다.

물리학이야 천재들만의 학문이 아닌가.

그런 내가 상대성이론 발표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를 써야 한다니!

학교 다닐 때도 과학을 제일 싫어했는데….

집에 들어와 소파에 털썩 누웠다. 누구한테 뭘 물어봐야 되지…

아인슈타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아무래도 내일 가서 그냥 못 한다고 말해야 할까. 머리 아프다….》

○ ‘E=mc²’을 아느냐

갑자기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 덕분에 전기 펑펑 쓰면서 사는군. 불이나 끄고 자지 그래?”

낯선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헉, 누구세요?”

백발이 성성한 외국인 할아버지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도둑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근데 한국말 잘하네.

“내가 필요한 것 같아 들렀지. 내가 죽은 줄 알았지? 사실 난 아직 곳곳에 살아있네.”

“호, 혹시 아인슈타인?”

“흠, 이제야 알았군. 어떤 멍청한 것들은 내 얼굴을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와 혼동하곤 하지. 그래도 내가 좀 더 잘생겼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특종이다! 아인슈타인이 살아있다니. 아인슈타인 독점 인터뷰, 한국 기자상, 아니 퓰리처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제발! 침착해야 돼.

“저, 저, 저기 앉으세요. 뭐 마실 거라도?”

“자네 물리를 하나도 모른다고 했지. 혹시 ‘E=mc²’은 들어봤나?”

“그럼요, 엠씨스퀘어. 집중력 향상 도구 아니에요? 친구가 쓰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쯧쯧…심각한 수준이군. 그건 나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나온 공식이야. M의 질량을 가진 물질이 핵융합 또는 핵분열을 하면서 질량이 m만큼 감소했다면 m에 빛의 속도의 제곱(c²)이 곱해진 만큼의 엄청난 에너지(E)가 발생하지. 이 공식을 이용해서 원자력 발전을 하는 거야. 만약 1g의 질량이 에너지로 바뀐다면 무려 2500만 kWh의 에너지가 발생해 7000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네. 이 나라 전기의 40%는 원자력 발전으로 얻어지지. 그것도 모르면서 매일 전깃불을 켜놓고 자나? …그리고 사실 이 공식으로 핵폭탄도 만드네.”

맞다. 그가 이를 이용해 핵폭탄을 만들자고 제2차 세계 대전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는 역사적 사실이 생각났다. 나중에 이를 후회하며 핵폭탄 반대 운동에 나섰다는 사실도.

○ 시간도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

“참, 특수상대성이론 100주년이라는데 그게 도대체 뭐죠?” “일단 우주에서 가장 빠른 것은 빛이고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는 전제를 먼저 기억하게. 예를 들어 1초마다 전파를 보내는 시계를 우주선에 실어 보냈어. 지상에서 우주선의 시계에서 보내는 전파를 관측했더니 1분에 한 번씩 전파가 오는 거야. 하지만 우주선 안에서 보면 시계에선 정확히 1초마다 전파가 나오고 있네.”

“정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것은 매우 빠르게 운동하는 물체에서는 시간이 느려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야. 우주선이 만약 빛의 속도로 달린다면 전파의 간격은 무한대가 되겠지. 빛의 속도로 달리는 우주선을 타고 한 달을 여행하고 돌아오면 지구에서는 수백, 수천 년이 지났을지도 몰라. 여기서 중요한 게 뭔지 아나?”

“글쎄요.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 아녜요?”

“그래 맞았어. 사람들은 공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은 알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똑같은 1시간이라도 미인과 함께 있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간다는 사실을 생각해봐. 관측자에 따라 시간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내가 증명한 거야. 공간과 시간이 같이 달라지니 누구나 자신의 시공간에서 빛의 속도가 일정할 수 있는 거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일상생활에서는 빛의 속도에 가깝게 운동하는 게 없으니 그런 현상을 느낄 수 없잖아요.”

“우주에선 가능하지. 또 실험도 할 수 있어. 만약 하루살이를 1초에 27만km 움직이는 장치에 넣는다면 그 안의 시간이 2배로 느려지면서 우리가 보기에 하루살이는 이틀을 살 수 있을 거네.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려면 빨리 움직여야겠지? 하하.”

조금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더 어렵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은 무엇일까.

“특수상대성이론은 물체가 등속운동을 한다는 가정하에 만든 것이지. 그러나 실생활에서 모든 물체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 가속도 운동을 하네. 중력의 영향을 고려해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나는 중력이 세면 주변 시공간이 휜다는 사실을 알았지. 예를 들어 태양같이 중력이 센 곳 주변에서는 별빛이 휘는 것처럼 보이네. 중력이 어마어마한 블랙홀 주변은 시공간이 너무 휘어서 물질뿐 아니라 빛까지 모두 빨려 들어간다네.”

“너무 어렵네요. 머리를 쓰니까 배가 고파지는데 저녁이나 먹으면서 하죠. 제가 살게요.”

그와 함께 차에 올랐다. 특별한 손님이니 한 번도 안 가본 고급 식당으로 가야겠다. 길을 몰라 내비게이션을 가동시켰다.

“바로 이거야! 인공위성이 보낸 전파를 이용해 자동차가 있는 지점을 운전자에게 알려주고 목표 지점까지 어떻게 가는지 안내하잖아. 그러려면 인공위성의 시계가 지구상의 시계와 일치해야 하지. 근데 인공위성은 너무 빨리 움직이니까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라 그 안의 시간은 느리게 가겠지. 또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라 중력이 지표면보다 작으니까 시간이 빨리 가기도 한다고. 그 차이를 보정해 지구상의 시계와 똑같이 가도록 해줘야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휴대전화의 ‘친구찾기’ 기능도 인공위성자동위치측정시스템(GPS)을 이용하고 있네.”

○ 미술 속에도 아인슈타인 있다

그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섰다. 좀 이상하다. 아인슈타인과 같이 왔는데 아무도 놀라지 않고 쳐다보지 않는다. 거 참, 아인슈타인도 몰라보다니.

“식사 중이니까 재밌는 얘기 해주세요. 어려운 거 말고요.”

“상대성이론이 미술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는 얘기들도 하더라고. 자네 콧수염 난 얼굴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을 아나?”

“아, 해변에 죽은 시계가 막 늘어져서 널려있는 그림이죠?”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간이 정지할 것이다. 달리의 그림은 시간 정지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물질이 변하지 않는 근원적인 것인줄 알았지만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질은 에너지로 변할(E=mc²) 수도 있다. 또 물질보다 더욱 절대적인 것이었던 시간도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계가 측정하는 하나의 물리량’일 뿐이다. 이런 생각들이 당시의 미술과 문학 등에 영향을 주었을 법하다.

“피카소 같은 입체파 화가들은 앞과 옆, 뒤 등 여러 면에서 본 물체를 한 화면에 담아냈잖아요. 그것도 상대성이론의 영향이 아닐까요?”

“가능성이 있지. 20세기 초에 나 말고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거든. 보는 관점에 따라 뭐든지 달라지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생겼지.”

또 뭘 물어볼까 생각하며 이마를 긁적이고 있던 나를 유심히 쳐다보던 그가 묻는다.

“이마의 점은 좀 빼지 그러나. 요즘 레이저로 하면 깨끗하게 잘 빠지잖아.”

“이거 ‘복점’이에요. 근데 혹시 레이저도 만드셨어요?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데.”

“레이저를 만든 건 아니고, 내가 제시한 원리가 레이저 개발의 기초가 됐어. 1917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빛 입자가 높은 에너지를 가진 원자를 자극하면 원자는 똑같은 빛 입자를 하나 더 내놓는다는 이론을 발표했거든. 이런 식으로 똑같은 빛 입자가 모인 순수한 빛을 만들 수 있어. 이게 레이저야.”

“그럼 할아버지 없었으면 점 빼기나 라식수술도 못할 뻔했네요.”

“뭘, 흠흠. 참고로 CD나 DVD에 담긴 정보를 각각 음향과 영상으로 읽어내는 것, 슈퍼마켓에서 물건 사고 계산할 때 바코드를 읽는 것도 다 레이저가 하는 거라네.”

○ 디카 속의 광전효과 원리

아차, 사진을 찍어야 한다. 누가 아인슈타인을 만났다는 것을 믿겠는가. 급히 디지털 카메라를 꺼냈다.

“디지털 카메라군. 요새 이거 없으면 못 사는 사람들 많지? 그건 ‘광전효과’에 의한 것인데 내가 그 원리를 규명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지. 광전효과란 빛 입자가 금속판을 때리면 전자가 튕겨 나가는 현상이야. 디지털 카메라에는 전자결합소자(CCD)라는 부품이 있어. 400만 화소 카메라에는 400만 개의 CCD 소자가 붙어 있지. CCD에 빛이 들어가면 광전효과에 따라 전자들이 튀어나와 전기가 흐르지. 이 전류를 이용해 사진 파일을 만드는 거라네.”

“그럼 캠코더도 같은 원리이겠군요.”

영화에서 비밀스러운 장소에 들어갈 때 신원확인용으로 사용되는 홍채인식장치나 지문인식장치에도 CCD가 사용된다. 햇빛이 태양전지판을 때리면 전자가 나와 전기가 흐르는 태양전지도 같은 원리라고 그는 말했다.

“우와, 광전효과 덕분에 ‘싸이질’도 가능한거군요. 저 내용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가서 할아버지 만난 거 기사 써야 돼요. 증거로 사진 같이 찍어요. 자. 하나, 둘, 셋, 찰칵!”

‘쿵!’

눈앞에서 빛이 번쩍했다.

깜짝 놀라며 눈을 뜨니 우리 집 소파 위. 오전 3시. 또 불을 환하게 켜 놓고 잠이 들었다.

뭐야, 꿈이었어? 그럼 아인슈타인은, 기념사진은, 내 기자상은?

허무하다. 근데 머릿속은 아인슈타인과 나눈 얘기들로 꽉 찬 것 같다. 꿈에서 그를 만나 혹시 나도 천재가 된 것은 아닐까.

다음날, 나만큼이나 과학에 무지한 친구를 만났다.

“너 ‘E=mc²’이 뭔지 아냐?”

“왜, 그거 사려고?”

그래, 넌 역시 나의 진정한 친구다.

“바보, 그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나온 건데… 어쩌고 저쩌고. 참, 그거 아냐? 불 켜 놓고 자면 아인슈타인 귀신이 나와서 ‘E=mc²’이 뭐냐고 묻는 거.”

(이 기사는 가상의 상황이며 동아사이언스 김상연 기자, 가톨릭대 교양교육원 이관수 교수, 전남대 물리교육과 박종원 교수가 아인슈타인 역할로 도움말을 주었습니다.)

글=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그래픽=이진선 기자 geranum@donga.com

▼많이 배우기 보다 많이 체험해야 창의력 ‘쑥쑥’▼

‘우리 아이도 혹시 아인슈타인?’

부모들은 누구나 자신의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한번쯤 즐거운 착각을 해 본다.

과학사가들에 따르면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인 아인슈타인이지만 어린 시절에 주위를 놀라게 할 만큼 똑똑한 학생은 아니었다.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의 홍성욱 교수는 “아인슈타인의 뇌가 일반인들에 비해 특출했다는 것은 언론이 만들어 낸 신화일 뿐이고 크게 보면 보통 사람들의 뇌와 별 차이가 없었다”며 “창의적인 사람들이 대부분 IQ가 120 이상이라는 조사 결과는 있지만 120 이상에서 비례관계는 없다”고 말했다.

타고난 머리보다는 창의력을 길러주는 교육과 훈련이 관건이라는 얘기.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실 조석희 실장은 아이가 호기심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도록 집 한구석에 실험실을 마련해 주라고 조언했다. 실험실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고 방해받지 않고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둘 수 있는 곳. 실험도구를 갖춘다면 좋겠지만 부모가 세트로 사서 안기는 것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나이에 적합한 도구들을 하나하나 사 모으는 것이 낫다.

아이의 말은 성실하게 들어줘야 한다. 조 실장은 “아이가 실험한 것을 자랑할 때 부모가 그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면 아이는 신이 나서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실험을 하다 보면 결과가 신통치 않을 때가 많다. 이때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너는 해보려고 했구나” 등의 칭찬을 해 주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다양한 체험학습도 좋다. 방학 기간 중 각종 전시회나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은 물론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공부가 된다.

경인교육대 과학교육과 김난주 교수는 “많이 배운 학생보다 많이 본 학생들이 더욱 풍부한 창의력과 사고력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다만 부모가 계속 질문을 통해 아이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시소를 타면서 힘의 평형에 대해 얘기하고 길을 걸으며 그림자가 해의 반대방향에 생긴다는 것들을 일깨우며 “왜 그럴까?” “만일 …라면?” 등의 질문을 던져본다. 부모가 과학적 지식이 있으면 더 좋지만 모른다고 해도 대화 자체가 아이의 상상력과 사고력을 키워준다.

아이디어도 지식이 있어야 나오기 때문에 독서는 기본이다. 과학교육 포털 사이트 ‘사이언스올(http://www.scienceall.com)’에는 학년별로 권장 과학도서 목록이 제시돼 있다. 조석희 실장은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자들은 어릴 때 1주일에 5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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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정보는 한국물리학회, 세계물리학회 조직위원회 참조.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진욱 씨(서강대 사학과 2년)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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