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파리의 여인들’…파리를 주무른 여인들

  • 입력 2005년 1월 14일 16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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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 물린 여자’ 상오귀스트 클레진저의 대리석 조각상 ‘뱀에 물린 여자’(1847년 작). 아폴로니 사바티에의 몸을 석고로 떠서 만든 이 작품은 성적 황홀경에 빠진 여성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고 있지만 고급 매춘 여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프랑스 속어 ‘그랑드 조리종탈’(바닥에 드러누운 여성)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아 내고 있다.
‘뱀에 물린 여자’ 상
오귀스트 클레진저의 대리석 조각상 ‘뱀에 물린 여자’(1847년 작). 아폴로니 사바티에의 몸을 석고로 떠서 만든 이 작품은 성적 황홀경에 빠진 여성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고 있지만 고급 매춘 여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프랑스 속어 ‘그랑드 조리종탈’(바닥에 드러누운 여성)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아 내고 있다.
◇파리의 여인들/버지니아 라운딩 지음 김승욱 옮김/435쪽·1만6000원·동아일보사

19세기 파리를 사로잡았던 성매매 여성 4명의 삶을 통해 나폴레옹 3세가 통치했던 프랑스 제2제정기를 전후한 시대의 풍속사를 조명했다. 화려한 겉치레 속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던 이 시대의 여주인공 중 두 명은 프랑스인이지만 나머지 두 명은 각각 러시아 국적의 폴란드계 유태인과 영국인이다.

프랑스 여성은 소설 ‘춘희’와 뮤지컬 ‘라 트라비아타’의 실존 모델로 불멸의 존재가 된 마리 뒤플레시스(1824∼47), 오르세이 박물관에 영구 전시 중인 나체 조각 ‘뱀에게 물린 여자’의 모델로서 에로티시즘의 화신으로 남은 아폴로니 사바티에(1822∼90)다. 이방인으로 파리를 점령한 두 여인은 유태인이라는 혈통을 과시하듯 성매매 여성에서 파리 최대 저택의 주인이 된 라 파이바(1819∼84), 도버해협을 건너와 멋진 승마술로 나폴레옹 3세의 동생과 사촌의 심장을 동시에 훔친 코라 펄(1835∼86)이다.

이들은 모두 돈에 몸을 파는 성매매 여성이었다. 특히 뒤플레시스는 당대 성매매 여성의 전형적 삶을 살았다. 가난한 시골 집안에서 태어나 열여섯 이전에 처녀성을 빼앗기고 파리로 올라와 여직공으로 일하다가 돈의 유혹에 빠져 부유한 남자들 사이를 전전했다. 또한 그녀는 타고난 거짓말쟁이였으며 당시 과도한 성행위로 인한 호흡장애로 발병한다고 믿어진 폐렴에 걸려 23세에 요절했다.

그러나 이들은 싸구려 성매매 여성이 아니었다. 당시 교사의 연봉이 300프랑일 때 뒤플레시스의 한 달 생활비는 3000프랑에 이르렀다. 라 파이바는 하룻밤 화대로 1만 프랑을 불렀다고 한다. 화류계의 귀족에 해당하는 이들을 부르는 용어가 이 책의 원제인 그랑드 조리종탈(Grandes Horizontales)이다. ‘위대한 수평선’을 뜻하는 이 말에는 바닥에 누운 여신 같은 존재라는 성적 뉘앙스가 담겨 있다. 실제 그들은 남자를 선택할 권한을 가졌고, 돈 거래를 배제한 ‘마음의 연인’을 거느릴 수 있었다. 또 수많은 문인과 화가들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이 여주인공들을 남성 중심의 사회 질서를 뒤바꾼 여걸로 치장할 법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좀 더 섬세한 여성의 시선으로 그들을 포착한다. 그들이 아무리 매력적인 여성이라 한들 성매매 여성이라는 상처는 평생 낙인처럼 따라다녔다. 라 파비아는 화류계와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던 당시 사교계에 편입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썼지만 평생 사교계에 발을 디딜 수 없어 좌절해야 했다.

또 그들의 엄청난 사치도 역설적으로 그들의 발목을 묶는 족쇄였다. 그들에게 지불된 돈은 모두 그들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에만 쓰였다. 또 그들은 그런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한 후원자가 떠나면 다른 후원자를 물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에 따르면 남자들은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그들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훔쳤다. ‘춘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2세는 한 남자에게 얽매이기를 거부했던 뒤플레시스를 독차지하고자 자신만을 사랑한 지고지순한 존재 마르그리트 고티에로 박제했다. 시인 보들레르는 사바티에를 구원의 여성상으로 삼아 ‘악의 꽃’ 시집의 시를 지었지만 막상 시집이 출간된 뒤 사바티에가 그 사랑을 받아들이려 하자 “난 당신을 이용했을 뿐”이라는 잔인한 말을 남기고 도망쳤다.

이들 4인방 중 유일하게 자서전을 남긴 코라 펄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나는 지금까지도 결코 남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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