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貴相 福相 賤相

  • 입력 2005년 1월 11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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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용모 말 글 판단력 등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중시해 왔다. 그래서 관리를 등용하고자 할 때는 이 넷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이 중 신이 가장 앞자리에 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용모와 풍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귀 잘생긴 거지는 있어도 코 잘생긴 거지는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군대에서도 용장(勇將) 지장(智將) 덕장(德將)보다 복장(福將)이 가장 경쟁력 있는 장군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身)은 물론 ‘잘생긴 얼굴(美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얼굴(好相)’을 말한다. 잘생겼지만 왠지 덕이 없는 얼굴이 있고, 적당히 생겼지만 귀와 복이 넘치는 얼굴이 있는 것이다. 잘생긴 얼굴은 타고나지만 좋은 얼굴은 후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간의 손금도 세월이 흐르면 바뀐다고 한다. 실제로 국내 인상학 박사 1호인 주선희 씨는 “타고나는 얼굴은 20∼30%에 불과하며, 70∼80%는 후천적 환경이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나이 사십이 넘은 인간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라가 잘되고 번성하려면 권력 핵심부에 귀상과 복상이 차고 넘치도록 많아야 한다. 하지만 현 정권 실세 중에는 그런 얼굴이 드물다. 실세 총리는 차고 날카로운 표범상(相)에 가깝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 및 열린우리당 주요 당직자 중에도 국민을 편안하게 해 주는 좋은 인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탓에 날마다 주요 뉴스로 그런 얼굴을 대해야 하는 국민은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천정배 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좋은 얼굴을 갖고 있었으나 원내대표가 된 후 맘고생을 심하게 해서 그런지 자신도 모르는 새 얼굴이 찌들어 버렸다. 대통령의 외곽 측근으로 공인된 유시민 안희정 문성근 명계남 씨 같은 이들도 편하고 복 있게 생긴 얼굴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1980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처음 TV에 등장해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경과를 읽어 내려갔을 때 많은 이들은 그의 얼굴에서 뭔지 모를 살기(殺氣)를 느꼈다. 국민의 좋지 않은 예감은 이후 광주에서의 학살로 이어졌다. 피로써 집권한 그는 서석준 이범석 함병춘 김재익 씨같이 신언서판을 두루 갖춘 일급 참모를 등용해 자신의 강성 이미지를 희석했다. 야당 총재 시절의 김대중 대통령도 집권을 염두에 둔 ‘뉴 DJ 플랜’의 하나로 탄압에 찌든 오랜 측근들 대신 젊고 잘생긴 신진기예들을 곁에 두어 자신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했다.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사 파문으로 검증과 추천을 맡았던 핵심 인사들이 경질됐다. 대통령은 이제 자신의 나머지 임기 3년을 실용적으로 뒷받침해 줄 인재들을 영입하려 할 것이다. 아무쪼록 코드보다는 실력, 그리고 국민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얼굴을 가진 인재를 많이 등용해야 한다. “사람을 잘 쓸 줄도 알아야 하지만 잘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경구를 되새긴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될 것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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