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귀신 잡는 사또 납신다

  • 입력 2005년 1월 7일 16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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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씨는 “(지난해 말 개작을 완성한) ‘불멸의 이순신’이 도스토예프스키적 비극이라면, (올해 초 첫선을 보인) ‘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는 카프카적 몽상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탁환 씨는 “(지난해 말 개작을 완성한) ‘불멸의 이순신’이 도스토예프스키적 비극이라면, (올해 초 첫선을 보인) ‘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는 카프카적 몽상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김탁환 지음 백범영 그림/1권 222쪽, 2권 205쪽·각권 9800원·이가서

김탁환 씨의 열 번째 소설이다. 그는 권수로 따져 1996년 데뷔한 이후 이번까지 모두 서른 권의 책을 펴냈다. 그가 데뷔 후 군대에 갔다 왔음을 감안하면 폭발적으로 글을 써온 셈이다. 그는 특히 지난해 1년간 원고지 1만 장 분량을 썼다. 그는 “낮에는 대(大) 비극인 ‘불멸의 이순신’을(1998년 소설 ‘불멸’을 원재료로) 다시 썼으며, 밤에는 희극적인 몽환소설인 ‘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를 썼다”고 밝혔다.

김 씨는 장편만을 써왔으며 ‘허균, 최후의 19일’(1999년)에선 광해군 시대, ‘압록강’(2001년)에선 인조 시대, ‘나, 황진이’(2002년)에선 중종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2002년)에선 숙종 시대, ‘방각본 살인사건’(2003년)에선 영·정조 시대, ‘불멸의 이순신’(2004년)에선 선조 시대를 다뤄 조선시대의 주요한 고비를 대부분 다뤘다. 이 소설의 배경은 16세기 초 연산군 시대다.

그러나 이야기의 도입부는 현대를 무대로 삼았다. ‘김탁환’이라는 실명인물이 나오는데 막역한 학교 동창 ‘동철동’과 함께 러시아 여행을 갔다가 발레리나 ‘콘차로바’를 만난다. ‘김탁환’은 일종의 흡혈귀인 ‘콘차로바’로부터 목을 물린다. 이후 소설의 시간은 훌쩍 과거로 뛰어 ‘김탁환’의 전생인 ‘아신’이 이야기를 넘겨받게 된다. 아신은 ‘전우치전’의 바로 그 전우치와는 죽마고우 관계를 넘어 동성애를 느낄 정도다. 조선판 콘차로바라 할 수 있는 여승 미미를 사모하고 있기도 하다.

부여 현감 아신은 모두 10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는 매번 ‘조선조의 수사관’이 되어 10가지의 다른 사건들을 풀어나가려고 한다. 작가는 이들 이야기는 모두 옛 설화들에서 캐내온 것이라고 밝혔다.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몽상 같은 기괴한 이야기들이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아신 앞에 던져지는 사건은 이런 것이다. ‘800년 동안 자살한 이라곤 한 명도 없는 낙화암에서 하루 한 명 꼴로 투신하는 이가 생긴다’ ‘반야산 기슭에 세워진 돌부처가 처녀의 발목을 잡아 기절시켜 끌고 간다’ ‘2월 보름만 되면 열 살 사내애가 백마강에 빠져 죽는데 시신을 찾을 길이 없다’ 등등.

아신은 무예와 추리력에서 누구 못지않지만 문제를 풀어나가다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곤 한다. 전우치가 이때마다 해결사로 나선다. 전우치는 이들 문제가 인간이 풀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요물과 귀신들의 짓으로 보고 힘겨루기에 나선다.

그 앞에 나타나는 괴물들은 머리 넷인 새 ‘사두조(四頭鳥)’, 네 발과 날개 달린 둥근 공처럼 생긴 ‘잼잼’ 같은 것들이다. 이 같은 몽환적 분위기는 작가의 ‘문장 유희’로도 연결된다. 독자들은 소설 속에서 나비나 이빨, 공이나 술잔 모습처럼 활자들을 배열시켜 놓은 대목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 중세의 으스스한 괴담(怪談)들을 현대의 인간적이며 유머러스한 판타지로 다시 만들어낸 우리 장르문학의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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