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들의 ‘광복 60돌’ 새해맞이

  • 입력 2005년 1월 6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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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에 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박옥선 할머니가 초를 밝히고 나눔의 집 역사관에 걸린 위안부 할머니들의 초상화 앞을 걷고 있다.
6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에 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박옥선 할머니가 초를 밝히고 나눔의 집 역사관에 걸린 위안부 할머니들의 초상화 앞을 걷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출신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경기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의 안신권 사무국장은 3일 후원통장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지난해 마지막 날 누군가가 1000만 원을 입금시켰기 때문. 통장에 찍힌 송금인은 ‘서울대 내과4’. 안 국장은 수소문 끝에 서울대병원 내과 전공의들이 후원금을 보낸 사실을 확인했지만 몇 명이 어떻게 모금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함께 살진 않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항의집회나 증언 때마다 나왔던 김상희 할머니(84)가 2일 별세했다는 소식에 비통해하던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뜻밖의 선물에 기뻐했다고 안 국장은 전했다.》

올해는 광복 60돌을 맞는 해다. 그러나 일본군에 의해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이들의 상처는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물지 않고 있다. 일본은 속죄하지 않고, 한국 정부는 일본의 보상 책임을 묻는 데 소극적이다.

더욱이 세월 앞에서 ‘못다 핀 꽃들’이 하나둘 산화(散花)하는 모습을 보며 위안부 할머니들은 “결국 모두 이렇게 떠나는 것 아니냐”는 조급함마저 갖고 있다. 현재 여성부에 신고한 국내 거주 위안부 할머니는 모두 128명. 나눔의 집엔 10명의 할머니가 있다.

그래도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이름 없는 이들의 따뜻한 손길 때문이었다. 지난해 11월 초에는 인천 부평여고 학생 8명이 나눔의 집을 찾았다. 전철과 버스, 택시를 갈아타며 3시간이 걸려 왔다는 이들은 성금 19만8100원을 내밀었다. 학생들이 빵을 팔아 마련한 것. 할머니들은 손녀뻘 되는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해 어버이날에는 나눔의 집 주변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5년 동안 모은 동전이라며 9만6000원을 건네기도 했다.

이들 돈은 모두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전문요양시설 건립에 쓰일 예정이다. 의료시설과 물리치료실, 운동시설을 갖춘 요양시설 건립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새해 소망 중 하나.

안 국장은 “2002년 초 여성부 조사결과 위안부 할머니의 83%가 혼자 살고 있으며 대부분 노후대책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조사결과를 본 뒤 곧바로 요양시설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해 3월부터 요양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땅 한 평 사기운동’을 벌인 나눔의 집은 당시 봇물 터지듯 밀려든 성원에 하루하루가 감동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했다.

모금운동이 시작된 직후 소설가 공지영 씨가 ‘봉순이 언니’의 인세 5000만 원을 쾌척했다. 나눔의 집 대표인 송월주 스님과 설송 스님이 각각 1000만 원씩을, 일본후원회에서도 2000만 원을 보내왔다.

10개월 만에 1억8000여만 원이 모였고, 이 돈으로 그해 12월 나눔의 집 주차장 뒤편의 공터 700여 평을 구입했다. 나눔의 집은 이 땅에 지하 1층, 지상 2층, 건축면적 240평 규모의 요양시설을 만들어 50여 명의 위안부 할머니를 모실 계획이다.

이제 건물만 올리면 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모금한 돈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액수는 6000여만 원. 건축비 10억 원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안 국장은 그래도 희망을 얘기한다. 1992년 처음 나눔의 집이 만들어진 것도, 나눔의 집이 전셋집을 전전하다 1995년 광주시에 터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지금까지 운영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국민이 끊임없이 후원해 준 덕택이기 때문이다.

안 국장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고령인 데다 건강이 좋지 않아 어떻게든 올해 꼭 요양시설의 첫 삽을 뜨고 싶다”며 “요양시설이 완공되면 기적을 일궈낸 후원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동판에 새겨 걸어 놓고 싶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 031-768-0064, 인터넷 홈페이지 www.nanum.org

광주(경기)=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요양시설 왜 늦어지나▼

‘나눔의 집’이 전문요양시설 건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비단 건축비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요양시설 건립을 위해 2003년 1월 사업계획서와 함께 법인의 정관변경 신청을 경기 광주시에 냈으나 광주시는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

팔당호 수질보전대책지역 내에선 한 건축주가 건축면적 800m² 이하로만 건물을 지을 수 있는데 나눔의 집의 건축면적은 생활관과 역사관, 교육관 등을 합해 990m²로 기준을 넘었다는 게 불허 이유다.

문제는 또 있다. 광주시는 설령 요양시설이 들어서도 운영비를 지원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무료 복지시설의 경우 통상 국비(國費)와 도비(道費), 시비(市費)를 합해 운영비 전액을 지원해주도록 돼 있다. 그러나 최근 보건복지부가 운영비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광주시 관계자는 “신설 복지시설에 대한 지원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광주(경기)=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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