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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9월 16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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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트 신부는 1960년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딘 뒤 1965∼1975년에 인천 영종도에서 사제 생활을 하다 인혁당사건으로 1975년 4월 30일 강제 추방됐다. 인혁당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가족들을 도와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계속한 것이 추방 이유였다.
미국으로 돌아간 시노트 신부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일기를 썼다. 그는 일기를 쓰다가 미국인들이 한국을 너무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기 위해 영종도를 배경으로 한국의 근대사를 다루는 짧은 소설을 쓰려던 것이 4년간의 작업으로 이어져 장편소설이 됐다. 그리고 이 소설이 15년 만에 한국에서 번역돼 지난달 출간됐다.
이 소설은 1918∼1975년 사이의 역사를 공소(천주교 본당의 지소 같은 곳) 신자들의 가족사로 풀어냈다. 그 안에는 3·1운동, 난징대학살, 일제의 강제징병, 6·25전쟁, 5·16군사쿠데타, 그리고 인혁당사건 등 한국 근현대사가 녹아 있다.
“그때 영종도는 전화도, 전기도, 병원도 없었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웠지요. 당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들은 그들의 가족 내력과 내 상상력을 더해서 썼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신부가 되고 싶었던 그에게 영종도의 삶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었다. 교리를 전하면서 병든 사람에게는 백방으로 약을 구해 주기도 했다.
시노트 신부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은 1974년 시련에 부닥쳤다.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의 직원과 주한미대사관 친구에게서 인혁당사건이 조작되고 당사자들이 고문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뒤 그는 구속자 부인들과 함께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1975년 4월 8명이 사형선고를 받은 지 하루 만에 처형됐고 그는 추방됐다.
시노트 신부는 추방되기 전, 동료 신부들과 함께 육영수 여사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박근혜 대표가 인혁당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의 가족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진심으로 사과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02년 10월, 추방 27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시노트 신부는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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