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신상호展…도자 - 회화 경계 깬 ‘불 그림’

  • 입력 2004년 8월 17일 19시 18분


도예가 신상호씨가 신작 ‘불 그림’들 앞에 섰다. 일명 ‘fired painting’이라 명명한 이 그림은 도자와 회화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양주=허문명기자
도예가 신상호씨가 신작 ‘불 그림’들 앞에 섰다. 일명 ‘fired painting’이라 명명한 이 그림은 도자와 회화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양주=허문명기자
도예가 신상호씨(57·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장)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 양주시 장흥면. 지금은 ‘유원지’로 더 잘 알려진 곳에 이런 적막강산이 있나 싶게 한적하다. 안팎이 폭염으로 뜨거운데 그의 작업실 대형가마는 1300도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신씨는 흙과 불의 작가다. 성품 역시 흙과 불을 닮았다. 흙의 부드럽고 자유로운 기운과 불의 격정적이고 뜨거운 기운이 모두 그 안에 있다.

1970년대 분청사기로 가장 한국적인 도자의 미를 재현한다는 평을 들었던 그는 이어 인물과 동물의 두상을 빚은 ‘Head’ 연작,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받아 대형동물을 빚어내는 ‘아프리카의 꿈’ 연작을 선보여 왔다.

30여년간 강박에 가깝게 새로움을 추구해 왔다는 그가 이번 전시에서 또 다른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이른바 ‘불 그림’ 혹은 ‘구운 그림(fired painting)’. 흙판에 다양한 색깔의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뒤 다시 구워낸 신작들은 벽화처럼 은은하면서도 원초적인 깊이를 자아낸다.

한국 도예계의 거장이란 말을 들으며 줄달음쳐 온 작가는 이제 붓이니, 물감이니, 조각이니, 회화니, 설치미술이니 하는 모든 장르와 구분을 넘어서고 싶어 했다. 마치 창조주가 흙에다 영혼을 불어넣어 세상을 만들었듯이 평생 제멋대로 살아왔다는 그는 오로지 흙과 불 앞에서만 순응하는 예술가였다. ‘흙과 불’만으로 가장 자유롭고 싶다고 했다.

그는 최근 미술계에서 작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9월 12일까지 미국 뉴욕 근교 이스트 햄튼에 있는 야외 조각공원 ‘롱 하우스 리저브’ 전시장 초대전을 갖고 있는 것. 이 미술관은 1년에 한번 여름 휴가철에 전시를 하는데 한국인으로는 전무후무하게 신씨를 초대했다. 비록 사설 미술관이긴 해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부호들의 별장지대에 위치해 있어 신씨의 대형 동물 도조(ceramic sculpture) 작품들인 ‘아프리카의 꿈’ 연작 40여점을 선보이면서 한국 도예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늙음도 비켜갈 것 같은 열정의 예술가 신상호. ‘겁 없이 내 맘대로 살았다’는 그에게 문득 ‘울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작가는 인터뷰 내내 들을 수 없던 가장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달밤 가마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많이 울었다. 이 불은 아닌데, 이 가마 속 불을 지금 꺼야 하는데 차마 끄지 못하고, 어쩌면 한 개라도 건질 수 있다는 헛된 기대에 사로잡혀 한없이 약해지는 나를 들여다보며 내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해서 울었다.”

전시는 20일∼9월 3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갤러리 인. 02-732-4677∼8

양주=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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