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아크로폴리스]<28>젊은이들이여 세계를 보자

  • 입력 2004년 8월 11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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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대 외교학과 하영선 교수가 서울 광진구 중곡동 대원외국어고를 찾았다. ‘신(新)아크로폴리스-젊은 리더를 위한 민주시민 강좌’의 주 독자층인 고교생들을 학교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 만난 것. 하 교수는 이날 ‘세계의 변화를 바로 보자’를 주제로 대원외국어고 2학년 ‘GLP(Global Leadership Program)’ 과정 학생 50여명을 상대로 강연하고 토론을 벌였다. GLP 과정은 졸업 후 곧바로 미국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준비 중인 학생들의 클래스. 한국 땅에 발 디딘 채 세계를 꿈꾸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의 질문은 도전적이고 자신감에 차 있었고, 하 교수의 답변은 자상하고 설득력이 있었다(‘강의 요약’ 참조).》

―21세기 세계의 주인공은 단순히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앞으로 세계무대의 ‘뜨는 주인공’은 누가 될까요?

“21세기에는 국가라는 개념을 넘어서는 주인공이 생긴다는 거죠. 그 한 예로 초(超)국가기업, 즉 다국적기업을 들 수 있어요. 다국적기업은 현재에도 전 세계에 걸쳐 6만개의 본사와 50만개의 지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쁜 의미의 주인공이라면 테러조직도 꼽을 수 있겠죠.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하와이 진주만 습격을 당한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침략당한 적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 미국이 2001년 9·11테러로 크게 당했습니다. 미국은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붙잡으려고 혈안이지만 아직 잡지 못하고 있어요. 알 카에다가 그물망으로 이어진 ‘21세기형 조직’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런 다양한 주인공들이 새롭게 나타난다고 해서 국가가 없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세계무대의 주연이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요? 주연이 되기 위해서는 매력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그건 무얼 뜻하죠? 사실 강대국은 언론을 통해 ‘매력적인’ 이미지를 늘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유학을 준비하며 ‘미래의 세계인’을 꿈꾸는 대원외고 GLP반 학생들은 하영선 교수(마이크 들고 있는 사람)의 강연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하 교수는 ‘세계의 변화를 바로 보자’를 주제로 2시간여 강연을 하고 학생들과 토론을 벌였다.- 강병기기자

“앞으로 한 나라가 세계의 주인공이 되느냐 아니냐는 단순히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을 거예요. ‘몸짱(군사력)’이라고 해서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촛불집회의 힘만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습니다. 한 나라가 세계의 주인공이 되려면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차원을 넘어 지식과 문화 환경 외교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합니다. 실제 매력의 조건을 갖추지 않았는데 단순히 언론 같은 미디어의 조작을 통해서만 그런 매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죠.”

―인터넷을 통해 세계에 가까워지는 매력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 우리나라는 다양한 인터넷 콘텐츠를 갖고 있잖아요. 한국이 가진 매력을 인터넷을 통해 세계에 전파할 수는 없을까요?

“이 점에 대해서는 ‘예’와 ‘아니요’ 두 가지 대답을 모두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한국이 당장 군사력, 경제력으로 주연을 하기는 쉽지 않아요.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를 압도하지 못한다면 문화 또는 지식으로 다른 나라에 호소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죠. 인터넷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중 지식 측면을 부각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 점에서는 질문에 대해 ‘예’라는 대답을 하겠지만, 문제는 설비가 아니라 내용, 즉 콘텐츠지요. 한국이 다양한 콘텐츠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게임이나 채팅 등의 분야에서만 두각을 보일 뿐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학생들과 함께 조사한 바로는 국제 정치에 관해서 전 세계적으로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이트가 1000개쯤 되는데 이 중 800개가 영어권 국가에서 만들어진 사이트였어요. 이런 것만 봐도 한국에서의 인터넷 지식은 지구촌 전체의 수준으로 보면 썩 높은 것이 아니지요. 인터넷은 아직까지 한국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미완의 기회라고 봐야겠지요.”

―중국에 이어 최근 일본에서도 ‘한류(韓流)’가 유행인데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일본을 휩쓰는 이른바 ‘배용준 신드롬’은 순전히 문화적 측면에서 바라봐야겠지요. 배용준씨가 드라마를 통해 일본에는 없는 남성상을 보여줬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중국에 부는 한류 바람에 대해서는 최근 한 중국 학생이 제게 말해준 의견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그 학생의 말은 중국에는 13억 인구가 있기 때문에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거지요. 다만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간에 잦은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점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겁니다. 단순히 ‘한류’가 인기를 끈다고 해서 ‘한국이 중국을 장악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에요. 스스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공주병’은 결국 국제사회에서의 낙오로 귀결됩니다.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국가의 매력을 키워 나가야 해요.”

정리=주성원기자 swon@donga.com

▼강의 요약▼

오늘날 세계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현재 세계는 미국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50년 뒤에도 미국이 세계의 주인공일까. 이 점은 미국에서도 논란이 되는 주제다. 앞으로도 미국이 독주할 것이라는 ‘우세론’이 있다. 우세론의 근거는 군사, 경제, 기술력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미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戰) 이후 질서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을 예로 들며 ‘신중론’을 펴는 의견도 있다.

21세기 역사의 주인공으로 미국에 이어 주목받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에 대해서도 의견이 교차한다. 낙관론자들은 중국의 현재 경제성장 추이를 들어 앞으로 20년 후면 세계 2위권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면, 급속한 경제 성장은 조정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앞으로의 주인공이 될까. 당분간은 미국이 주연을 맡을 것이지만, 중국도 주연급 신인으로 등장할 것이고, 일본과 유럽연합(EU)도 비중 있는 조연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1세기에는 국가 이외에 다양한 형태의 주인공이 등장할 것이고 다양한 무대가 준비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문화, 기술, 지식, 환경 등 여러 분야의 무대가 마련될 것이다. 이런 무대에 서기 위해 우리는 어떤 ‘연기’를 해야 할까?

우선 세계를 넓게 살아야 한다. 삶의 공간을 확대하고 복합화해야 한다. 한국인인 동시에 아시아인이고 지구인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지구를 대상으로 다양한 ‘그물망’을 짜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친미나 반미, 친중(親中)이나 반중(反中)같은 이분법적 사고로는 21세기를 살아갈 수 없다. 세계의 세력분포를 정확하게 읽고 외세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이익과 지구의 이익을 동시에 품을 줄 아는 ‘한국적 세계인’으로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안으로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풀 줄 알아야 하고, 밖으로는 세계의 변화를 읽고 한반도의 백년대계를 구상할 줄 알아야 한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세계의 '현재와 미래' 이해를 돕는 책▼

▽21세기 한반도 백년대계(풀빛)=19세기의 역사적 교훈을 통해 오늘의 세계와 한반도 변화를 들여다보고, 다시 이를 통해 100년 후를 대비하는 ‘전략’을 제시.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분야별 전략이 담겨 있다.

▽21세기 먼 나라 이웃나라 (김영사)=세계를 알면 변화에 대한 대응도 쉽다. 만화로 알기 쉽게 설명했지만, 세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결코 가볍지 않은 깊이로 접근했다.

▽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종문화사)=세계의 분쟁과 대립, 결혼 및 이혼율, 종교 분포, 평균 수명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들을 지도로 만들어 설명. 세계의 오늘을 볼 수 있다.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필맥)=앞으로의 ‘세계 지배구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며, 각국마다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반 세계화’를 주장하는 이론가들이 토론을 통해 대안을 제시.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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