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Ⅲ’ 이끌고 한국 찾은 지리 킬리안

  • 입력 2004년 5월 28일 18시 40분


코멘트
40세 이상의 무용수들로 구성된 ‘NDT Ш’를 이끌고 내한한 세계 무용계의 거장 지리 킬리안은 “NDT Ш 무용수들과 작업하는 것은 유서 깊은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장을 넘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아래는 NDT Ш의 공연 모습.-사진제공 예술의 전당
40세 이상의 무용수들로 구성된 ‘NDT Ш’를 이끌고 내한한 세계 무용계의 거장 지리 킬리안은 “NDT Ш 무용수들과 작업하는 것은 유서 깊은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장을 넘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아래는 NDT Ш의 공연 모습.-사진제공 예술의 전당
1970년대 후반부터 줄곧 세계 정상의 안무가 자리를 지켜온 지리 킬리안(57)이 불혹의 나이를 넘긴 무용수들로 구성된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 Ⅲ’를 이끌고 최근 내한했다.

27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만난 그는 시종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무용수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체코 출신의 킬리안은 고도의 신체 테크닉과 음악의 완벽한 조화, 간결한 무대 위에서 펼치는 무용수들의 정제된 몸짓,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재치 있는 유머감각으로 그려내는 안무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75년 NDT를 맡은 이래 이 무용단을 세계 정상급으로 이끌었으며 나초 두아토, 오하드 나하린 등 현재 세계 무용계를 이끄는 안무가들을 직접 키워냈다.

40세가 넘으면 현역에서 은퇴하는 것이 관례인 무용계에서 킬리안은 1991년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인 NDT Ⅲ를 만들었다. NDT는 기량이 뛰어난 무용수들로 구성된 NDTⅠ, 17∼22세의 젊고 힘이 넘치는 무용수들로 구성된 NDTⅡ, 그리고 NDT Ⅲ 등 세 팀으로 나뉜다.

당시 반응은 냉담했다. ‘아무리 킬리안의 무용단이라지만 나이 든 무용수들을 데리고 얼마나 가겠느냐’는 시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살이 무용단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13년째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그와 함께 내한한 무용수들은 41세인 패트릭 델크르와부터 62세인 에곤 마드센까지 5명. 이 중에는 킬리안의 아내인 53세의 사비네 쿠퍼버그도 포함돼 있다.

“NDT Ⅲ의 안무를 할 때는 일반 안무와 다르지요. NDT Ⅲ의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안무를 해요.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 무용수가 겪어 온 삶과 무용의 경험, 그리고 여기서 우러나는 표현력을 드러내기 위해 안무를 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들이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빠른 회전이나 높은 도약 등의 기교가 아니라 그런 기교를 넘어 내면에 흐르는 깊은 감정이다. 킬리안은 “극장을 나설 때 관객들은 그냥 ‘무용’을 관람한 것이 아니라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난 느낌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NDT Ⅲ와 함께 작품을 만든 안무가들은 킬리안 외에도 모리스 베자르, 윌리엄 포사이드, 마츠 에크, 나하린 등 유명 안무가들이 거의 망라돼 있다. 올해는 로버트 윌슨과 새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 무용수들과 작업하는 것은 마치 유서 깊은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 오래된 책의 책장을 넘기는 것과 같아요. 표현해야 할 풍부한 감정이 이미 그들의 인생과 무용의 경험을 통해 내면에 쌓여 있지요.”

그래서 베자르는 이 무용단을 가리켜 ‘20세기의 가장 큰 발명품’이라고 격찬한 바 있다.

무용수들이 몇 살까지 무용수로서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킬리안은 “죽을 때까지”라고 대답했다.

“파블로 피카소는 자신이 젊어지기 위해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했어요. 오랜 시간을 거쳐 나이가 들면서 창조성은 더 커졌다는 뜻이지요.”

세계적 안무가로서 춤의 원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수백번 받은 질문이지만 그때마다 다른 대답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음악이 가장 중요했지만 그동안의 경험, 만났던 사람들, 세월의 흐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변해갑니다.”

NDT Ⅲ는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29일 오후 7시반, 30일 오후 4시 공연을 남겨 두고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