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집회 ‘대리참석 시대’

  • 입력 2004년 5월 12일 18시 36분


《지난달 초 서울 송파구의 모아파트 주민들이 인근 고층빌딩 건축현장 앞에서 일조권 침해 등에 항의하기 위해 벌인 시위현장. 며칠 계속된 시위에는 매번 30여명의 ‘주민’이 참가했지만 이 중에는 왠지 어색한 사람들이 적잖게 눈에 띄었다. 이들은 주민을 대신해 참석한 ‘대리인’들. 이 아파트 근처의 직업소개소인 A사 대표는 “시위 시작 전 주민회에서 ‘시위 참석자 10명만 구해 달라’고 부탁해 대리참석자를 급히 구해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주민처럼 위장하기 위해 40, 50대 중년 아줌마만 골랐고 옷차림에도 신경을 썼다”며 “이런 일이 자주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B업체 대표는 “1인당 4시간 대리참석은 3만5000원, 8시간은 5만5000원 정도로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각종 집회 시위가 일상화하면서 이 같은 전문적인 시위 대리참석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수도권과 서울 일대에 재개발과 환경권 조망권 등을 요구하는 민생관련 집회가 늘어나면서 대행업체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

특히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의 경우 상당수의 직업소개소가 대행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파출부나 용역업체 직원을 다수 확보하고 있으면서 집회나 시위의 성격에 맞게 연령과 성(性) 등을 달리하는 ‘맞춤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주민들이 대리참석자를 구하는 것은 집회 불참시 재개발조합이나 부녀회에 물어내야 하는 벌금이 만만치 않기 때문.

또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낮시간에 개최되는 집회 참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불참으로 인해 주민들로부터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는 것도 이유 중 하나.

강남구 청담동의 주부 김모씨(48)는 “시위 참석은 물론 시위를 결정하는 모임에만 빠져도 벌금 10만원을 물어내야 한다”며 “인력업체를 이용하면 절반 정도의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이를 이용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또 “아파트라는 좁은 공간에서 단체행동에 불참하는 것은 자녀들의 교육정보 등에서 소외되겠다는 의미”라면서 “이른바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용인시의 전모씨(52·여)는 “집회 참석자가 많아질수록 주민들의 ‘권리찾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대리참석을 필요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경찰 관계자는 “대리참석자는 이해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집회나 시위에서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않아 오히려 질서유지에는 좋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장유식(張W植) 변호사는 “집회 대리참석은 민주주의 정신에 맞지 않는 꼴불견행위”라고 꼬집었다.

중앙대 신광영(申光榮·사회학) 교수는 “대리참석자들의 집회에 경찰이 경비를 서는 데에도 국민의 세금이 쓰이므로 집회 주최측으로부터 비용을 환수하는 제도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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