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12>봄과 입춘(立春)

  • 입력 2004년 2월 3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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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春이 되었다. 입춘은 冬至(동지) 이후 대지의 음기가 양기로 돌아서면서 모든 사물이 왕성히 생동하기 시작하는 봄의 시작이자 24節氣(절기)의 처음이다.

옛날 같으면 대문마다 立春大吉(입춘대길·입춘이 되니 크게 길할 것이요) 建陽多慶(건양다경·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으리라)과 같은 立春帖(입춘첩)을 커다랗게 써 붙여 놓을 것이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도 보기 힘들어졌다.

立은 갑골문(왼쪽 그림)에서 사람이 팔을 벌린 채(大·대) 땅(一)위에 서 있는 모습을 그렸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竝이 된다. 立에 占(점칠 점)이 더해진 站은 오래 서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元(원)나라에 들어 ‘베이징짠(北京站·북경역)’과 같이 站이 역(驛)을 뜻하게 되었는데, 이는 몽골어의 잠(jam)을 音譯(음역)한 말이다. 음역어조차 자기들의 고유글자로 교묘하게 위장시킨 중국인들의 지혜가 놀랍다.

春은 갑골문(오른쪽 그림) 당시만 해도 대단히 형상적이었다. 풀(艸) 사이로 태양(日·일)이 그려져 있고 소리부 겸 의미부인 屯이 들어 있다. 屯은 싹(철·철)이 땅(一)을 비집고 올라오는 모습을 그렸다. 따라서 春은 겨우내 깊이 잠들었던 만물이 싹을 틔워 봄 햇살 아래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모습을 그렸다.

따라서 立春은 겨우내 움츠림을 털고 일어나 대지위에 서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새싹의 모습을 감상할 때라는 의미가 스며있다. 우리말의 봄도 ‘보다’의 명사형이니, 바로 이러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는 계절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春은 새 생명의 상징이다. 그래서 靑春(청춘)이라는 말도 생겼다. 나아가 春은 春畵(춘화)처럼 남녀간의 애정을 뜻하기도 하고 술을 의미하기도 한다. 唐(당)나라 때에는 金陵春(금릉춘), 竹葉春(죽엽춘), 梨花春(이화춘) 등 春이 들어간 술 이름이 많이 등장했다. 지금도 중국 최고 명주의 하나인 劍南春(검남춘)은 險道(험도)로 유명한 사천성 ‘劍南’의 술이라는 뜻이다.

春이 술을 뜻하게 된 것은 술을 빚으면 황록색을 띠게 되는데 이 색이 봄의 색인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지지만, 적당한 술은 사람의 기운을 새싹처럼 돋아나게 하기 때문도 아닐까 한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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