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문학평론/작은 존재들 사랑의 언어로 감쌀터

  • 입력 2003년 12월 31일 16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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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대구 출생 △1992년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현재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 재학
△1969년 대구 출생 △1992년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현재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 재학
▼문학평론 당선소감-박정희▼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면 소리를 채집하는 음향기사가 나옵니다. 그의 귀는 절 마당에 눈발 흩날리는 소리, 갈대밭에 바람 스치는 소리, 사랑하는 사람의 여린 숨소리, 그리고 그 사람의 다정한 눈빛의 소리에 말을 걸고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귀뿐만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몸 전부가 사랑이라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존재를 소리로 번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부터 그 음향기사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너무 자잘해서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 너무 사소해서 이름을 잃어버린 존재들, 아름답지 못해서 버려진 존재들, 하여간 휘거나 굽거나 부러지거나 망가진 존재들을 육감적인 사랑의 언어로 되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말이지요.

오랜 집착에 이은 포기의 순간에 도착한 당선 소식, 귀하게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먼저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오생근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애꿎게도 분석 대상이 돼 버리신 정현종 선생님과 황지우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대구의 식구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올케언니와 귀여운 조카 준현 군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이쁜 이탈리아 개 박피곤 주니어 하늬와 신피곤 할머니, 그대들은 내 감사의 마음을 이미 받았겠지요?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긴 벗 김종희와 나의 모든 인연들아! 얼굴 좀 보고 살자.

▼심사평-섬세한 분석능력에서 가능성 읽어▼

문학비평은 시와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의 방식이다. 그 방식이 어떤 관점을 동반하건 문학비평의 ‘비평성’은 작품의 표면적 논리 속에 감춰져 있는 심층적 논리를 꿰뚫어보는 안목에 좌우된다. 좋은 비평이란 그러한 심층적 논리를 잘 포착하여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글일 것이다. 비평에 대한 이런 원론적 기준을 염두에 두고 모두 17편의 응모작들을 검토한 결과, ‘홍명희의 임꺽정 다시 읽기’(김은경),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최윤 론’(허서형), ‘몸·육체를 둘러싼 두 개의 시각-정현종과 황지우의 시에 대하여’(박정희) 등 세 편이 최종적인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이 세 편 중 첫 번째 글은 ‘임꺽정’을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모계중심 서사와 그것의 저항 담론적 성격을 탐색한 글이었지만, 이론과 실제가 조화롭게 결합된 느낌은 부족하였다. 두 번째 글은 최윤의 장편소설 세 편의 중심인물들이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모습을 면밀히 고찰한 논의에는 무리가 없었으나, 새로운 지적 모험의 시도로 보기는 어려웠다. 또한 세 번째 글은 정현종과 황지우의 시에 나타난 몸·육체의 의미를 흥미롭게 해석한 글이었는데, 왜 두 시인을 대상으로 삼았는지, 또는 두 시인을 비교하려 했다면 비교의 논리가 좀 더 철저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결국 이 글을 당선작으로 결정한 것은, 시에 대한 감각적인 통찰력과 섬세한 분석능력으로 비평가로서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생근 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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