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다시 떠납니다”…길상사 회주 물러나

  • 입력 2003년 11월 26일 2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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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세상의 번잡함을 피해 1970년대 중반 서울 봉은사에서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으로, 1990년대 초 불일암에서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떠났던 법정(法頂·71) 스님이 또다시 세속의 직책을 훌훌 털어버렸다.

법정 스님은 28일 발간될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소식지에서 “서울 성북구 길상사 회주(會主)와 ‘맑고 향기롭게’ 회주 등 공식 직책에서 모두 물러난다”고 밝혔다. 회주란 법회나 단체를 주재하는 스님을 가리킨다.

법정 스님은 ‘내 그림자에게’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림자야, 지금까지 내 뒤를 쫓아다니느라 고생 많았다”고 인생 전반을 담담하게 돌아봤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법회와 30권에 이르는 책에서 침묵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는데 정작 나 자신은 많은 말을 쏟았다”며 “돌이켜보면 내 말과 글이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글이었는지 반성하게 된다”고 밝혔다. 스님은 “앞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하겠다”며 “앞으로 법회는 매년 봄가을 두 차례만 길상사에서 갖겠다”고 말했다.

스님은 “목사 등 타 종교 성직자들의 정년이 70세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70세가 넘어 소임을 맡는 것이 마치 통행금지 시간이 지나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스님은 “그동안 사람들이 ‘회주’라고 부르는 것이 마치 ‘회장님’처럼 들려 거북스러웠다”면서도 “길상사와 ‘맑고 향기롭게’는 인연이 닿는 곳인 만큼 일개 스님과 회원으로서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고 밝혔다.스님은 “지금 나이엔 화사한 봄꽃의 아름다움보다 늦가을에 피는 국화의 향기로움처럼 남고 싶다”고 말했다.

길상사측은 12월 21일 법정 스님의 정기법회는 예정대로 열린다고 밝혔다. 길상사는 시인 백석(白石)의 연인으로 요정 ‘대원각’을 운영했던 고 김영한 할머니가 96년 건물과 대지를 법정 스님에게 기증해 건립된 절이다.

▶법정스님 "내 그림자에게" 전문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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