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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1월 9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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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달박사와 崔교수 ▼
최재천 교수가 제인 구달 박사를 처음 만난 것은 1996년 구달 박사의 첫 방한 때였다. 월간 ‘과학동아’에서 최 교수에게 인터뷰를 부탁하자 최 교수는 “정말 맨발벗고 뛰어나가듯이 달려가서 만났다”고 한다. 동물행동학자인 최 교수는 동물학계의 살아 있는 신화로 알려져 있는 구달 박사를 일찍부터 존경해 왔기 때문이다.
![]() 제인 구달박사는▶1934년 영국 런던 출생 ▶1960년 탄자니아 곰비국립공원에서 침팬지 연구 시작 ▶1965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동물행동학 전공) ▶1977년 美 샌프란시스코에서 최초의 '제인구달연구소' 설립 ▶1991년 자연보호운동 '루츠 앤드 슈츠' 시작 ▶저서='인간의 그늘에서', '희망의 이유', '생명 사랑 십계명' 등 -변영욱기자 |
마침 그 무렵 구달 박사에 관한 특집기사가 실린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최 교수의 박쥐 연구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두 사람은 ‘특별한’ 인연을 이야기하며 금방 마음이 통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지내는 사이가 됐지만, 최 교수에게는 구달 박사가 남겨주고 간 ‘짐’이 있었다. 구달 박사가 방한 당시 한국의 동물원에 있는 침팬지들의 열악한 상황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그에게 개선방안을 부탁했던 것. 방도를 찾으면 구달 박사가 직접 각국의 침팬지들을 데려 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최 교수는 구달 박사처럼 침팬지를 연구하고 보호하는 연구소를 만들기로 하고 마침내 5월 서울대 구내에 이 연구소를 발족시켰다. 그 이름은 ‘영장류 연구 및 보존 연구소(The Institute of Primate Research and Conser-vation·약칭 ‘영장류연구소’)’.
최 교수는 특히 일반인들의 연구 활동 참여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연구소가 틀이 잡히는 대로 일반인들이 침팬지의 생활과 연구자의 활동을 볼 수 있도록 연구소 일부를 개방하는 한편 이들의 침팬지 관찰 결과를 연구자료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구달 박사도 “일반인들이 침팬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기뻐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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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소장=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침팬지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아프리카에서 침팬지와 함께 살면서 두렵거나 힘들지는 않았는지요.
▽제인 구달 박사=제가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제 앞에 굽이굽이 펼쳐진 길을 따라가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살아 있는 것들에게 관심이 많았어요. 닭이 달걀을 어떻게 낳는지 궁금해서 닭장 안에 네 시간이나 숨어 있기도 했죠. 제가 없어진 줄 알고 경찰까지 불렀던 어머니는 제가 관찰한 장면을 설명해 주자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주었어요. 그 뒤 어머니는 평생 제 후원자가 되었죠. 대학도 다니지 않은 제가 26세에 침팬지 연구를 위해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곰비국립공원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함께 가서 저를 돌봐주었어요.
▽최=가끔 제게 고민을 털어놓는 한국 어머니들을 보면 박사님의 어머니 마음을 이해할 것 같군요. 한국 어머니들도 아이들이 벌레를 기르면서 함께 노는 것을 보고 질색하지만, 결국 그게 아이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인내하면서 아이들을 격려하죠.
▽구달=어릴 때부터 그런 경험을 갖는 게 소중해요. 제가 네 살 때 닭을 관찰했던 일을 돌이켜보면 그 어린 소녀 안에 이미 과학자가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 즉 끊임없는 호기심, 의문의 제기, 스스로 해 보려는 마음, 반복적 실험 등이 다 있었던 것 같아요. 이를 통해 저는 사물을 침착하게 관찰할 수 있었고, 그 곁에는 이런 저를 북돋워주는 어머니까지 있었어요.
▽최=박사님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1960년대만 해도 이런 연구 방식이 매우 낯선 것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구달=아프리카에서 침팬지들과 지내다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공부하러 가 제가 동물마다 사람처럼 이름을 붙이고 그들에게도 사람의 마음 같은 것이 있다고 하자 이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더군요. 저는 오히려 학자들의 그런 태도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르던 개, 러스티는 제 믿음에 확신을 줬지요. 동물에게도 개성, 마음, 감정이 다 있어요. 동물 하나하나를 개성 있는 동료로 보지 않고 번호로 구분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들만을 위해 동물을 함부로 다루려 하는 거대한 음모입니다.
▽최=꿀벌의 언어를 밝혀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카를 폰 프리슈 박사가 임종할 때 그의 수제자가 “동물이 정말 생각할 줄 압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동물이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자네도 알고 있네. 이것을 다른 사람도 알 수 있도록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과학자의 임무 아니겠느냐”라고 대답했다고 하더군요.
구달 박사는 1977년부터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등에 차례로 ‘제인구달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와 환경보호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최 소장은 이 연구소들의 설립 계기를 물었다.
▽구달=그 무렵 탄자니아에서 동물들을 연구하며 환경보호운동을 펼치던 대학원생 4명이 이들의 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사람들에게 납치된 사건이 있었어요. 이 때문에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탄자니아에 오기가 어려워졌지요. 그래서 아프리카 밖에 연구소를 세워 연구기금도 모으고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려 했습니다.
▽최=구달 박사님은 침팬지 연구뿐 아니라 환경보호, 지역사회 연구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영역을 확장해 오셨는데….
▽구달=1986년 미국 시카고에서 최초로 전 세계 침팬지연구가들이 모여 학술회의를 가졌어요. 학술회의에 이어 침팬지의 서식지 파괴, 동물학대 등의 문제가 논의됐죠. 그때 결심했어요. 연구도 중요하지만 연구대상인 침팬지들이 없어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최=그래도 1년에 거의 300일이나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저도 96년 첫 방한한 구달 박사님을 만난 뒤 영장류연구소를 만들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연구대상이 없어지는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죠. 하지만 일부 연구가들은 동물을 희생시켜 연구하는 덕분에 인간이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구달=생물을 희생시키면서 얻은 연구 성과가 그렇게 큰 것인지 저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의학계의 연구를 보면 환경 침해적인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에서 더 많은 성과를 얻는 사례들을 볼 수 있어요. 35년간 나이팅게일(새의 일종)을 연구했던 독일의 동물학자 디트마르 토트도 처음에는 나이팅게일의 울음을 연구하기 위해 나이팅게일을 죽여 뇌를 해부하곤 했지만 이제는 살아 있는 것을 관찰하면서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물론 살아 있는 상태에서 연구하는 것은 더 힘들고 시간도 더 걸리지요.
▽최=저도 5월부터 서울대에 영장류연구소(www.iprc.or.kr)를 열어 영장류의 인지, 행동, 생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침팬지를 연구하느냐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구달=침팬지와 인간의 DNA는 99%가 같습니다. 침팬지는 인간과 동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간들에게 알려 줍니다. 침팬지를 연구하다 보면 마치 자연이 인간들에게 자연을 알게 하기 위해 침팬지를 ‘대사’로 파견한 듯해요.
▽최=구달 박사님의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들도 전쟁을 한다고 하는데, 유엔이 임명한 평화대사(2002년)로서 침팬지와 인간의 전쟁을 비교해 보시면 어떤가요.
▽구달=침팬지들 사이의 전쟁이란 자기 공동체 보존이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약탈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침팬지와 달리 직접 전쟁하고 희생당하는 사람과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이 달라요. 이는 경제적 문제와 관련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전쟁은 결국 ‘돈’ 때문에 공동의 목표도 상실하고 더 잔인해진 것이지요.
구달 박사는 1991년 유·청소년 중심의 환경보호 시민운동단체인 ‘루츠 앤드 슈츠’를 창립했다. 창립 12년 만에 이 모임은 86개국 6000여개의 조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구달=‘뿌리와 새싹’은 작지만 힘을 모으면 바위도 뚫을 수 있습니다.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의 메시지’인데, ‘루츠 앤드 슈츠’는 세상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운동입니다. ‘루츠 앤드 슈츠’는 직접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습니다. 회원들이 각자 지역사회에 살면서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활동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어른들보다 아이들을 바꾸기가 더 쉬워요. 아이들이 바뀌면 그들이 부모를 바꾸지요.
▽최=저도 강연을 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강연에 참가한 아이들의 60%는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이렇게 전국의 아이들을 60%만 바꾸면 20년 후 이들이 사회의 주역이 됐을 때는 한국사회가 크게 변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구달=막연한 게 아니라 사실이 그럴 거예요. 저는 그동안 못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가졌는데, 얼마 전부터 잘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환경을 망치는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지요.
정리=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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