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795년 존 키츠 출생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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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과 셸리, 그리고 키츠.

19세기 초반 낭만주의 시대에 별처럼 빛나는 이들 시인은 모두 요절한 천재의 운명을 타고났다.

바이런과 셸리가 낭만주의의 시발점이 된 ‘슈트롬 운트 드랑(질풍과 노도)’의 세월을 살았다면 키츠의 삶은 좀 더 은밀하고 영적(靈的)인 향기로 채워졌다.

바이런이 ‘시단(詩壇)의 나폴레옹’이었다면,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던 셸리가 인류개조의 이상을 꿈꾸었다면,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후계자였던 키츠는 고전에 뿌리를 두고 지극히 미학적인 예술세계를 지향했다.

바이런의 뜨거운 정열이나 셸리의 웅변에 비해 키츠의 정서는 섬세하면서도 단아했다. 그의 내면은 ‘희랍의 옛 항아리’에서 읊은 것처럼 ‘들리는 멜로디는 달콤하다/그러나 들리지 않는 멜로디는 더 달콤하다’고나 할까.

마차 대여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키츠.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그의 생전은 불우했다.

키츠가 폐결핵으로 숨지기 이태 전에 만난 생애 유일한 사랑 패니 브라운조차 ‘시인의 진정한 뮤즈’는 아니었다.

바람을 맞으면 저절로 울린다는 에올리언 하프처럼 섬세한 감정을 지닌 시인에게 ‘방종(放縱)에 들뜬’ 연인은 지옥이었다. 그는 다른 남자와 시시덕거리는 패니를 지켜보며 이별을 별러야했다. “사랑의 촉감(觸感)은 기억을 품고 있네/오! 사랑이여/그것을 죽여버리고 자유를 되찾으려면/어떻게 해야 하느냐.”

패니는 생기발랄했다. 진지한 대화를 싫어했으나 재기 넘친 수다와 때론 요염하게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는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과도한 열정(熱情)은 치명적이었다.

마침내 ‘당신의 아름다움과 나의 죽음의 시간/아, 그 둘을 동시에 소유할 수 있다면…’이라고 노래하는 시인. 그는 1821년 이국땅에서 그녀가 선물로 준 흰색 조약돌을 손에 꼭 쥔 채 쓸쓸히 숨을 거둔다.

키츠의 묘비는 그의 유언에 따라 이렇게 씌었다.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쓴 자 잠들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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