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633>自 暴 自 棄 (자포자기)

  • 입력 2003년 10월 28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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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 暴 自 棄 (자포자기)

暴-포악할 포 棄-버릴 기

諸-여럿 제 眼-눈 안

謀-꾀할 모 芻-꼴 추

흔히 自暴自棄라면 좌절한 나머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러나 본디 自暴自棄는 그런 뜻이 아니며 自暴와 自棄는 엄연히 구별되었다. 이 말을 최초로 사용한 이는 孟子(맹자)다.

孟子는 인격의 修養(수양)을 누구보다도 강조한 사람이다. 그가 중시한 것은 仁義(인의)였다. 그러나 당시는 戰國時代(전국시대)라 戰爭(전쟁)이 치열할 때였다. 諸侯(제후)들은 누구나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데에만 血眼(혈안)이 되어 있었지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왕은 없었다. 孟子는 그런 世態(세태)를 개탄했던 사람이다.

梁惠王(양혜왕)도 그런 部類(부류)의 왕이었다. 孟子를 불러 놓고는 대뜸 ‘무슨 利益(이익)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화가 난 孟子가 말했다.

“왕께서는 그 많은 말 중에서도 하필이면 利益을 말씀하십니까. 저에게는 오직 仁義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당시 사람들은 목전의 이익에만 血眼(혈안)이 된 나머지 仁義를 멀리했다. 그는 그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그래서 말했다.

“自暴하는 자와는 함께 이야기할 수 없고 自棄하는 자와는 함께 일할 수 없다. 입만 벌리면 禮(예)와 義를 비방하곤 하는데 이것을 自暴라 하고, 仁義를 실천할 수 없는 자를 自棄라고 한다. 仁은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집이요, 義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걸어야 할 正道(정도)다. 사람들이 편안한 집을 비워두고 살지 않으며 正道를 버리고 걷지 않으니 슬프구나.”

곧 그에 의하면 自暴가 보다 적극적으로 惡行(악행)을 일삼는 자라면 自棄는 善惡(선악)을 구별은 하면서도 善을 행하지 못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곧 ‘못된 놈’과 ‘덜 된 놈’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孟子는 ‘못된 놈(自暴하는 사람)’과는 말할 것이 못 되며 ‘덜 된 놈(自棄하는 사람)’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했다.

孔子(공자)도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는가. ‘道不同, 不相爲謀(도부동, 불상위모·뜻이 다르면 함께 일할 수 없다).’

그렇다. 孟子의 말처럼 仁義는 집과 길이다. 우리가 한 시도 집을 떠나 살 수 없고 잠시도 길을 비켜 걸을 수 없는 것처럼 항상 가까이 하고 중시해야 하는 것이 仁義다. 그의 말은 오늘날에도 反芻(반추)해 볼만하다. 목전의 이익에만 현혹되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망각하고 있다면 그런 자야말로 自暴自棄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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