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때문에…두딸 재혼남편 姓으로 허위 출생신고

  • 입력 2003년 10월 20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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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무조건 생부(生父)의 성(姓)을 따르도록 하는 현행 호주제가 한 여성 공무원을 범죄의 길로 내몰았다.

경기 일산경찰서는 사별한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두 딸이 재혼한 남편의 성을 따르지 못하자 놀림감이 될 것을 우려해 재혼 후 출산한 것처럼 허위로 출생신고를 한 혐의로 고양시 공무원 A씨(37·여)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결혼 후 96년과 97년 두 딸을 두었으나 98년 1월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자 2000년 12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했다.

그러나 재혼한 남편의 성과 아이들의 성이 달라 놀림감이 되지 않을까 늘 고심했다.

주민등록 전산처리업무를 담당했던 A씨는 2001년 6월 현 남편 주소지인 서울 성북구청에 현 남편과 동거 중 두 딸을 낳았다며 각각 98년과 9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출생신고를 다시 했다.

물론 성은 현 남편의 성을 따랐고 이름도 바꾸었다. 출생신고 기한을 지키지 않은 데 따른 과태료도 물었다.

그러나 올해 초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됐지만 허위로 작성한 호적 때문에 나이가 두 살이나 어려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자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A씨는 결국 자신이 근무하는 동사무소 관내로 주민등록을 옮긴 뒤 딸들의 나이를 본래대로 수정해 입력했다가 감사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이 적발됐다.

A씨는 경찰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저지르게 됐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엄연한 불법행위지만 혐의를 인정하는데다 사정이 딱해 불구속 처리했다”고 밝혔다.

고양 여성민우회 김문정(金文貞) 사무국장은 “이번 사건은 호주제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부성(父姓)을 강제하는 호주제가 조속히 폐지돼 더 이상 여성과 아이들이 이런 고통을 겪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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