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패션]편하게…화사하게…'맨해튼에 뜬 무지개'

  • 입력 2003년 9월 25일 16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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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봄 패션이 컬러와 상인들을 살렸다(Spring lines revive colors and retailers).”

12일부터 19일까지 미국 뉴욕 맨해튼의 ‘브라이언트 파크’를 중심으로 열린 2004년 봄, 여름 뉴욕컬렉션을 마무리하면서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9·11이후 뉴욕에서 열린 패션쇼 가운데 가장 다양한 색상이 선보인 데다 장사가 되는 실용적인 디자인이 많아져 패션쇼 맨 앞자리에 앉은 주요 바이어들의 얼굴에도 희색이 만연했다.

창의성을 우선시하는 디자이너들과 ‘팔리는 디자인’을 앞세우는 바이어들의 생각은 종종 충돌하기 마련. 최근 고급의류 유통시장의 침체가 계속되자 디자이너들은 상업성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 유통 정보기관인 NPD그룹은 “보통 패션쇼에서 선보인 옷 가운데 10% 정도가 실제 생산에 들어가지만 올해는 20% 정도가 세상 빛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벳시 존슨의 패션쇼에서 선 보인 롤리타룩. 모델은 백윤애씨

●레이디룩 vs 롤리타룩

뉴욕 컬렉션에서는 남성복도 소수 선보이지만 대다수가 여성복으로 구성된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미국의 1920년대, 이른바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연상시키는 성숙한 ‘레이디룩’부터 아동복 같은 미니 원피스로 대표되는 ‘롤리타룩’까지 다양한 디자인이 선보였다.

‘미니멀한 디자인’이 특징인 미국 패션에 걸맞지 않게 유럽풍의 러플, 리본, 자수 장식 등 섬세한 장식물이 늘어난 것도 특징. 지난 컬렉션에서 1960년대 미래주의 패션을 재현한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고 영감을 얻었다”며 무릎 길이의 은색 드레스, 허리에 프릴 장식이 달린 원피스 등을 선보였다. ‘미래주의 패션’은 화제를 낳았지만 매출이 부진해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벳시 존슨, 피터 섬 등은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섹시한 미니 원피스를 선보였다. 벳시 존슨 쇼에는 한국의 슈퍼 모델 백윤애씨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백씨는 이 밖에도 장 프랑코 페레, 미구엘 애드로버 등의 쇼에 섰다.

디자이너 랄프 로렌 패션쇼에 등장한 의상. 야구복에서 모티브를 따와 스포티한 느낌이 들지만 A라인의 정장스커트, 코가 뾰족한 구두와 곁들여 고급스럽다.

●럭셔리 스포티룩

‘위대한 개츠비’는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과거 호황기를 그리워하는 미국인들의 심정을 반영한 것일까.

디자이너 랄프 로렌은 1974년 영화로 제작된 ‘위대한 개츠비’에 출연한 로버트 레드퍼드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다른 디자이너들은 보통 패션쇼를 한 번 여는 데 그쳤지만 로렌은 친구, 언론, 바이어로 초청객을 나누어 3차례나 쇼를 가졌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 영화 속 주인공들의 스포츠 웨어를 연상시키는 고급스러운 스포츠룩을 선보였다. 테니스복을 크림색 실크 롱드레스로 바꾸거나 크리켓 선수에게 잘 어울리는 린넨 소재의 가는 스트라이프 재킷을 만드는 식. 이 밖에도 테니스, 폴로, 펜싱 등 귀족 스포츠의 패션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의상들이 많았다.

디자인의 원형은 스포츠에서 따오되 의상의 소재는 실크, 부드러운 니트 등을 사용해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운동화가 아닌 도마뱀 또는 스웨이드 소재의 뾰족 구두 ‘스틸레토 힐’을 매치한 것도 그의 컬렉션이 ‘럭셔리 스포티’를 표방함을 보여주었다.

그룹 ‘N.E.R.D’가 연주하는 랩과 록으로 패션쇼를 진행한 토미 힐피거 역시 열대풍 바지, 재킷 등을 발표했다. ‘프레피 스타일’을 컨셉트로 내세우며 꽃무늬 프린트를 넣은 흰색 면바지나 강렬한 오렌지색 팬츠 등 알록달록한 남성, 여성 캐주얼이 무대를 누볐다.

올해 처음 뉴욕 컬렉션으로 무대를 옮긴 프랑스 브랜드 라코스테 역시 테니스복을 기본으로 스트라이프, ‘땡땡이’ 무늬를 넣은 달콤한 색상의 의상들을 발표했다.

오렌지와 노란색을 주조색으로 제작한 '빌 블래스'의 드레스. 실크 시폰 소재로 만들어져 우아한 분위기를 낸다. 이번 뉴욕컬렉션에는 이처럼 다양한 무지개 색상을 조화시킨 의상이 많았다.

●옐로와 오렌지의 승리

전체적으로 가장 많이 눈에 띈 색상은 노란색과 오렌지색이다. 특히 마이클 코어스의 무대에서는 따뜻한 휴양지를 꿈꾸게 하는 경쾌한 리듬의 음악과 함께 오렌지, 노란색의 셔츠, 팬츠, 머플러에 큼지막한 선글라스까지 갖춘 남녀 모델들이 활보했다. 이는 ‘카프리’를 테마로 비행기를 타고 자주 여행을 다니는 부유층을 뜻하는 ‘제트 세트(jet set)족’을 겨냥한 것.

디자이너 도나 카렌은 흙색 계열의 색상을 가리키는 각종 ‘어스(earth)톤’ 의상들을 선보였다. 그는 이를 선탠, 러기지(여행가방), 타바코(담배), 러스트(녹), 코퍼(구리)색 등으로 이름 붙였다.

17일 패션쇼장 앞에서 무료로 배포된 패션쇼 정보지 ‘더 데일리’는 ‘갑자기 몰려온 노란색 물결, 아름다운 이슈(Suddenly Yellow, The Beautiful Issue)’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오스카 드 라 렌타는 허리에 검은색 리본을 두른 샛노란색 원피스를, 캐롤리나 헤레라는 밑단에 흰색 주름이 달린 어깨끈이 없는 레몬색 원피스를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노란색은 여러 디자이너들의 정장, 수영복 등에서도 자주 등장했다.

이 밖에도 많은 디자이너들은 뉴요커 패션의 공식과 같은 ‘블랙 앤드 화이트’ 대신 다양한 파스텔톤, 원색들을 택했다.

현지 언론들은 이를 “정치, 경제적 긴장으로 위축됐던 미국 패션이 ‘낙관주의’라는 천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폼이 넉넉한 마이클 코어스의 리조트 웨어.

●편안하고 명랑하게

‘낙관주의’는 뉴욕 출신의 유명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 패션쇼에서 잘 드러났다. 이 패션쇼는 브라질 출신의 프란시스코 코스타(34)가 물려받아 처음 개최한 패션쇼. 코스타는 클라인의 전통을 계승하되 이와는 뭔가 다른, 편안하고 인간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클라인은 직원들이 회사에서 사용하는 클립이나 쓰레기통의 색상을 통일하고 커피에 타는 크림의 비율을 일정하게 하기 위해 사무실 옆 주방에 색상표까지 붙여둘 정도의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코스타가 이번 패션쇼에서 내놓은 작품은 크림색과 하늘색이 조화를 이룬 편안한 실루엣의 조끼, 셔츠 등. 그러나 기대가 집중됐던 그의 첫 컬렉션에 대한 바이어와 언론의 반응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역시 ‘페리 엘리스’에서 처음으로 컬렉션을 가진 디자이너 패트릭 로빈슨은 새틴 소재의 새틴 톱, 블라우스 등을 라일락, 피스타치오, 라벤더색 등으로 선보였다.

그는 “행복하고 긍정적인 컬렉션을 꾸미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뉴욕=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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