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문화비평가 기 소르망에게 듣는다

  • 입력 2003년 7월 27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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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왼쪽)과 이창훈 한라대 명예총장이 25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한 한국사회 개혁 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미옥기자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왼쪽)과 이창훈 한라대 명예총장이 25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한 한국사회 개혁 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미옥기자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주저앉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 한국 경제의 최대 화두다. 프랑스의 저명한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 교수는 주저 없이 “한국의 문화자산을 5∼10년 후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자원부 주최로 열린 ‘차세대 성장산업 국제회의’ 참석차 방한한 소르망 교수는 25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이창훈(李昌訓) 한라대 명예총장과 대담을 갖고 한국의 문화산업, 노사관계, 새만금 사업,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창훈 총장=귀하는 한국의 문화를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성공적인 문화상품화의 전략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기 소르망 교수=아시아에서 한국은 문화자산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 외국인들에게 동남아권 문화는 너무 이국적이다. 일본 문화는 너무 많이 소비됐고 중국의 전통문화는 지나치게 훼손됐다. 문화를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문화생산자의 삼각축이 ‘전략적 제휴’를 맺어야 한다. 이 중에서 정부가 가장 먼저 나서야 하는데 아쉽게도 한국 정부는 관료주의 때문에 문화창조 작업이 더딜 수밖에 없다.

이=구체적으로 한국이 대외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문화적 이미지 또는 브랜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소르망=나는 한국이 ‘에너지를 가진 국가’라는 점을 강조했으면 한다. 이는 아시아에서 매우 드문 이미지이며 외국인들, 특히 미국과 유럽인들이 쉽게 동감할 수 있는 문화적 의미이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는 한국이 아시아권에서 가장 말을 잘 타던 민족이라고 얘기했다. 한국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만 알아온 외국인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이미지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최근 한국에서 새만금 사업 논란을 계기로 환경론자와 개발론자 사이에 팽팽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귀하는 최근 저서 ‘진보와 그의 적들’에서 환경론자들의 지나친 정치화를 비판한 바 있는데….

소르망=환경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하나는 ‘자연적인’ 환경문제다. 이는 기술의 발전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경제가 발달한 국가일수록 환경오염을 줄이는 기술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환경오염의 진정한 해답은 기술적 진보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정치적인’ 측면의 환경문제는 풀기 어렵다. 환경론자들은 ‘실낙원’을 다시 지구에 만들 수 있다는 헛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내놓는 과학적인 근거들은 실제로 검증하기 힘들다. 상대방을 ‘비이성적’으로 몰아가는 환경론자들의 무조건적 반대에는 자기성찰이 결여돼 있다.

이=이익집단의 요구사항이 터져 나오면서 한국 사회가 혼란스럽다. 이 같은 집단 이기주의는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넘어가는 데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라고 보는가.

소르망=집단 행동주의를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이들의 요구는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측면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집단주의의 표현 방식이다. 집단주의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최근 한국의 집단주의에는 ‘대화의 문화’가 결여돼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교육의 문제이다.

이=최근 한국에서는 심각한 노사갈등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어가는 데 장애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유럽형 노사관계 모델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소르망=우선 다른 나라의 모델을 빌려오는 것은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말이 안 된다고 본다. 네덜란드 모델이 매우 ‘패셔너블’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17세기부터 내려온 그 나라의 정치 종교 문화적 산물이므로 다른 국가에 적용하기 힘들다.

한국은 한국 고유의 노사모델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노조가 두 가지 명제에 합의해야 한다.

첫째, 노조 활동과 요구는 자본주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 한국 노조는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과거 한국 노동운동의 주요 관심사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무엇보다 생산성이 높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임금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

둘째, 2만달러 국가로 진입하는 데 한국의 노동조건이 아직 취약하다는 점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필요하지만 해고 근로자들이 다시 노동시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재교육에 대한 투자도 중요하다.

이=귀하가 얘기하는 문화에 부가가치 덧붙이기를 위해서는 창조적 인재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최근 인재들이 해외로 떠나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 이유와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소르망=인재들은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떠난다. 정부가 기업의 성장을 돕는 유인책보다는 규제에 더 관심을 쏟고, 경제가 소수의 대기업에 의해 좌우되고, 노조가 제 몫 찾기에만 열중하는 사회에서 인재들은 숨을 쉴 공간이 없다. 중국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과 비슷한 인재 유출 현상을 겪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유럽 등지로 떠났던 인재들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들에게 파격적인 대우와 기회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이라크전쟁이 시작되기 전 프랑스 독일 등을 중심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유럽 세력이 결집됐었지만 지금은 다시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순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소르망=미국은 세력을 확장하면서 언제나 ‘민주주의 전파’라는 메시지를 내세운다. 이런 메시지는 분명 설득력을 갖고 있다. 미국이 세력을 확장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독재권력 아래에서 가난과 인권 유린이 자행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전 당시 유럽 지식인들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태도를 비난했지만 이라크의 비민주적 상황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유럽 지식인들은 소극적이고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미국과 유럽은 세계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 유럽은 현실적인 반면 미국은 이상적이다. 이런 세계관 차이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한 미국 주도의 ‘팍스 아메리카나’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대담=이창훈 한라大 명예총장

정리=정미경기자·언론학박사 mickey@donga.com

▼기 소르망 약력▼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 졸업

△소르본대 불문학 박사

△르 피가로,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알랭 쥐페 전 프랑스 총리 경제고문

△소르망 출판사 대표

▼이창훈 약력▼

△저서〓‘신국부론’ ‘자본론, 그 이 후와 종말’ ‘진보와 그의 적들’ 등

△프랑스 파리 10대학 정치학박사

△한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라대 명예총장

△아셈연구원 원장, 한-프랑스 정치학회 회장

△저서〓‘EU:정치·경제·법’

‘한국 외교사 Ⅰ·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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