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나종일/새삼 빛나는 ‘안중근 義士의 꿈’

  • 입력 2003년 7월 6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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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안중근 의사(1879∼1910) 순국 93주년이 되는 해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사형선고를 받고, 항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시간을 얻어 집필하다가 1주일 만에 사형당해 미완성된 유고가 70여년 만에 발견되었는데, 여기서 우리는 동양평화와 동북아시대에 대한 그의 뛰어난 통찰력과 사상을 접할 수 있다.

안 의사는 이 미완성 유고에서 단순한 민족주의론이나 타국의 독립을 무시하는 일본의 아시아주의론을 넘어 각국의 독립과 주체적 참여를 전제로 한 국제평화주의의 틀을 세운 것이다. 그는 단순한 독립운동가나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상가였으며, 이 사상을 과감하게 행동에 옮긴 실천가였다. 동북아시아에서 모든 민족의 평등 위에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자는 그의 제안들은 역사의 일부가 아니라 오늘날 더욱 그 의의가 중요하게 실감되는 살아 있는 사상이다.

90여년 전 안 의사는 동아시아에서 수많은 희생을 초래하는 일본의 패권추구를 두고 볼 수 없다며 대표적 패권추구 정치인인 이토 히로부미를 동아시아 만민의 이름으로 처단함으로써 세계에 경종을 울린 의인이었다. 그는 또 세계 최초의 지역협력체제 주창자였다. 그는 90여년 전 당시 이를 위한 기능주의적 접근을 제시한 위대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즉, 그는 동북아 공동의 개발은행 설립, 공동화폐 발행, 공동개발 프로젝트 수행 등을 제의함으로써 이 지역에서 모든 나라 사람들이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다.

안 의사는 뤼순(旅順)을 중립화해 동북아 평화의 거점으로 삼고자 했다. 20세기 초 뤼순은 러시아의 해양진출기지이면서 일본의 대륙 침략 거점이기도 해 동북아 분쟁의 도화선이었다. 지금 이러한 뤼순에 해당하는 지역이 바로 한반도이다.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와 균형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지역을 중립화하고 공동 관리함으로써 동북아의 평화와 연대의 길을 열자는 것이 안 의사의 생각이었다. 이 의인이 죽음을 맞이한 이후 반세기 넘어 이 지역에 일어났던 온갖 참화들을 생각하면 그를 기리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 이 지역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관심 있는 여러 나라의 학자들은 공동으로 안중근 연구를 시작할 때라고 생각한다.

안 의사는 오늘에도 살아 있다. 지역패권 추구와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는 동북아 지역에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안 의사가 일찍이 주창한 지역협력체제 강화를 통한 기능주의적 접근방안에서 우리 모두는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동북아 제국은 경제, 물류, 환경, 사회간접자본(SOC) 등 제반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해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중국방문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동북아 경제중심’ 건설을 위해 노력하면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실현을 위한 협력동반자로서 중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안 의사 순국 93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가 그를 새삼 선양해야 하는 이유가 자명해진다. 안 의사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를 열기 위해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나종일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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