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극단 물리의 '서안화차' 5일 막올려

  • 입력 2003년 6월 5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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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예술’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연극 서안화차. 상곤역의 박지일(오른쪽)과 찬승 역의 이명호.-사진제공 공연기획 악어
‘복합예술’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연극 서안화차. 상곤역의 박지일(오른쪽)과 찬승 역의 이명호.-사진제공 공연기획 악어
무대부터가 심상치 않다. 높다란 천장으로 제멋대로 보이는 파이프, 곳곳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철근, 금방이라도 돌 조각이 떨어져 내릴 듯한 벽면.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는 채 마무리되지 않은 듯한 내부공간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공간이 이번에는 아예 ‘폐허’처럼 변해버렸다. 사방을 어두운 무채색으로 칠하고 검은 마루판을 깔아 무거운 느낌을 더했다. 객석 주변도 온통 어두컴컴하다. 연극 ‘서안화차(西安火車)’를 쓰고 연출한 한태숙씨는 이곳에 대해 “극의 분위기와 너무나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한씨와 작업을 함께해 오며 호평을 받아왔던 무대미술가 이태섭씨의 작품.

‘복합예술’이라는 연극의 원래 개념에 충실해서 보면, 5일 막을 올린 극단 물리의 ‘서안화차’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각 분야에서 ‘범상치 않은’ 면면이 모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올린 ‘광해유감’이 전회 매진되면서 관심을 모았던 중견 연출가 한씨가 박지일 장영남 이명호 최일화씨 등 두각을 나타내는 배우들과 함께했다. 여기에 화가 임옥상씨는 연극에 사용되는 토용(土俑) 25개를 제작했고, 타악그룹 공명은 북으로 기차의 효과음 ‘칙칙폭폭’을 표현해냈다. 임씨는 진시황의 무덤에서 나온 토용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현대적인 모양새의 토용을 창조해냈다. 이런저런 요소들이 어우러져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낯설게 다가오는 제목 ‘서안화차’는 진시황의 무덤이 있는 중국 시안(西安)으로 향하는 기차라는 뜻. 연극에 등장하는 소재도 연극을 위해 모인 사람들만큼이나 평범하지 않다. 동성애와 관음증, 다중인격적인 인물 변화와 살인, 그리고 끝없는 소유욕.

연극은 상곤이 시안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상곤은 중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학창시절 친구 찬승과 동성애에 빠진 경험도 있다. 이런 배경이 그가 사회의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찬승은 가학적 성격의 양성애자로 상곤을 버리게 된다. 믿었던 찬승에게 배신당한 상곤은 계략을 세워 찬승을 살해하고, 그의 시신에 흙을 덮어 구워 조각으로 만든 뒤 시안으로 향한다. 결코 잡을 수 없는 ‘장생불사’를 잡고자 했던 진시황의 갈망은 찬승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상곤의 소유욕과 맥을 같이한다. 한씨는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사회 비주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것”이라며 “상곤은 사회의 이곳에도, 저곳에도 걸치지 못하는 인물, 또는 그 인물의 소외의식을 반영하는 배역”이라고 말했다.

대학로의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한 박지일씨가 변화무쌍한 성격의 상곤을 연기한다. 박씨는 “처음에는 동성애 역할이 쑥스러울 줄 알았는데, 역할에 몰입하다 보니 ‘기억의 한쪽’을 끌어내듯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연극이 가벼워지는 추세인데, 이번 작품은 모처럼 ‘문학성’과 ‘예술성’을 함께 갖춘 연극”이라고 덧붙였다. 7월6일까지. 설치극장 정미소. 화∼목요일 오후 7시30분, 금 토요일 오후 4시30분 7시30분, 일요일 오후 4시30분. 2만∼3만원. 02-764-8760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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