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스포츠계 “우먼파워 거세지만 아직은…”

  • 입력 2003년 5월 29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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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여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영국의 폴라 래드클리프.동아일보 자료사진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여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영국의 폴라 래드클리프.동아일보 자료사진
테니스 선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육상 단거리 선수 그리피스 조이너의 근육질 몸은 남자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나브라틸로바는 1992년 당시 한물 간 지미 코너스와의 성대결에서 졌고 조이너의 여자 100m 세계 기록도 남자 기록에 크게 뒤처진다.

아니카 소렌스탐의 PGA 투어 컷오프를 계기로 스포츠계와 학계에서 오랫동안 제기돼 온 의문이 또 다시 불거졌다.

‘여자는 아무리 강훈해도 태생적으로 남자보다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여자의 힘의 한계는….’

● 거세지는 우먼파워

스포츠계에서 남성의 영역에 도전한 최초의 여성은 메이저리그의 첫 여자 야구선수인 리지 머피가 꼽힌다. 머피는 1922년 시범 경기에서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 1루수로 뛰었다.

머피를 선두로 여자의 힘을 시험해 보기 위한 도전은 계속됐다. 1973년 여자 테니스 선수 빌리 진 킹은 보비 릭스와 성대결을 벌여 승리했다. 당시 여성계에선 킹의 승리를 쾌거로 받아들였지만 릭스가 은퇴한 선수여서 큰 의미가 부여되진 않았다.

몸싸움이 심한 아이스하키에서도 1992년 캐나다 선수 매넌 류메가 북미 아이스하키리그에 출전해 시선을 모았다. 미국 남자 대학 하키팀에 있었던 제니 한리(1991년), 남자 국가대표 주니어 역도팀원으로 활약한 캐시 클라크(1994년), 미식축구경기에 출전한 애슐리 마틴(2001년) 등도 남성의 영역에서 우먼파워를 과시한 선수들. 최근에는 권투, 레슬링 등 투기 종목에 입문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

● 그러나 한계는 있다

현재 유럽 리그에서 뛰고 있는 류메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링크가 넓어 몸싸움이 덜한 유럽 리그에선 남자들과 어울려 뛸 수 있을지 몰라도 보디체크가 심한 북미 리그에선 힘들다”고 털어놨다. 류메 스스로 밝힌 ‘여자의 한계’는 대부분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구기 종목의 경우 한국 여자 대표급 선수들의 경기력은 남자 중학교 고학년 또는 고등학교 저학년 선수들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인규 삼성생명 여자 농구팀 감독은 “중학교 남자팀과 연습 경기를 할 때 베스트 멤버를 출전시키지 않으면 이기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박 감독이 꼽는 가장 큰 차이는 순간 스피드와 점프력. 몸이 역삼각형 구조인 남자는 무게중심이 위쪽에 있지만 삼각형 구조인 여자는 무게 중심이 아래쪽에 있어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뛰는 힘, 즉 점프력이 떨어진다. 스피드 역시 근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처진다.

여자들이 훈련으로 근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소렌스탐의 경우에서 잘 드러난다. 소렌스탐은 드라이버샷 비거리를 늘이기 위해 지난 몇 달간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매일 윗몸 일으키기 150회 이상, 136kg짜리 역기를 등에 지고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100회 이상 반복했다. 특별 복근 강화 훈련과 지구력 훈련도 소화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소렌스탐의 드라이버샷 평균 비거리는 268야드로 LPGA투어에서 1위인 자신의 평균 비거리 275야드에도 못미쳤다.

직접 몸을 부닥칠 일이 없는 양궁 볼링 같은 기록경기에서도 남자가 앞선다. 양궁의 경우 남자가 힘에 앞서 화살이 바람의 저항을 덜 받기 때문이며 볼링은 무거운 공을 쓰는 남자가 파괴력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김광회 인하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기술면에선 여자가 어느 정도 남자를 따라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력 스피드 순발력 등은 생리학적으로 남자에 미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 마라톤은 해볼만 하다?

영국 스탠퍼드대의 엘리스 캐시모 교수는 여자 선수들의 경기력이 남자에 뒤지는 이유를 ‘사회적 편견’에서 찾는다. 그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의학적 통념과 그로 인해 여성에게 운동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 여자 육상 경기 가운데 가장 긴 거리는 800m 종목이었다. 그 이상을 달리면 자궁에 좋지 않다는 통설이 있었기 때문.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이르러서야 여자 마라톤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이 같은 학계의 주장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최근 여자 마라톤은 눈부신 기록 향상을 보이고 있다. 2001년 일본의 다카하시 나오코가 2시간19분46초로 22년 만에 20분벽을 깼다. 그로부터 1주일 만에 케냐의 캐서린 은데레바는 2시간18분47초를 기록했다. 이어 영국 폴라 래드클리프는 지난해 10월 2시간17분18초로 신기록을 작성하더니 올해 4월 런던마라톤에서 2시간15분25초로 자신의 기록을 갈아 치웠다.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남자 마라톤은 분당 주파거리를 7m 늘인 반면 여자는 두 배인 14m를 늘였다.

마라톤은 남녀 차가 가장 적은 스포츠로 꼽힌다. 영국의 과학 잡지 ‘네이처’는 2055년에는 여자 마라토너들이 남자 선수들의 기록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여자는 쓸 수 있는 체지방이 많은 데다 체지방을 에너지원으로 바꾸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여자가 오래 버티는 능력이 좋더라도 42.195km로 거리를 제한해 둔 마라톤에선 남자 기록을 능가하긴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래드클리프조차 “여자가 남자보다 장거리 달리기에 유리하다고 하는 건 마라톤보다 더 긴 거리일 경우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이유로 장거리 수영도 여자의 선전이 돋보인다. 체지방이 지구력 뿐 아니라 부력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 영국 도버 해협 횡단 최고 기록 보유자 3명 중 2명이 여자다. 이밖에 경마, 승마, 카레이싱 같은 종목도 여자가 성 차이를 느끼지 않고 기량을 겨뤄볼 만한 종목으로 꼽힌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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