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현 신부-수경 스님 '새만금 살리기 3보 1배' 동행취재기

  • 입력 2003년 4월 15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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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14일 오후 충남 보령시 웅천읍 근처에서 이라크전쟁과 새만금간척사업을 반대하는 3보1배를 하며 서울로 향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14일 오후 충남 보령시 웅천읍 근처에서 이라크전쟁과 새만금간척사업을 반대하는 3보1배를 하며 서울로 향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4월 봄볕에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가 얼굴에 확 퍼져간다. 땀 한 방울이 툭 떨어진다. 텁텁한 도로 먼지는 절할 때마다 사정없이 코를 자극한다. 트럭이 지나칠 때면 매캐한 매연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한다. 아, 땅바닥에 닿게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을 던지는 이곳이 어딘가.

수경 스님(52)과 문규현 신부(57)가 지난달 28일 전북 부안군 해창갯벌에서 ‘새만금 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 평화를 염원하는 3보1배’를 시작한 지 18일째인 14일 오후 3시반. 두 사람은 그동안 전북 부안군 김제시, 충남 서천군을 거쳐 보령시 웅천읍으로 향하는 21번 국도를 따라가고 있었다.

3보1배. 세 걸음마다 한 번씩 절을 하는 고행(苦行). 오전 8시부터 점심시간(1시간반)과 중간 휴식시간을 빼고 5시간 가까이 이동했는데도 고작 5㎞를 지나왔다.

문규현 신부의 형 문정현 신부가 3보1배의 생생한 모습을 6㎜ 비디오 카메라에 담아 참소리(cham-sori.net)에 올리고 있다.

이 속도로 지금까지 80㎞를 왔고 25일 도착 예정인 서울 광화문까지는 220여㎞가 남았다.

시작 3일째부터 오른쪽 무릎에 물이 찬 수경 스님은 절할 때 먼저 왼쪽 무릎부터 바닥에 닿게한다. 사흘 전에는 무릎에서 두루마리 휴지 반을 흠뻑 적실 정도로 피를 빼냈다. 13일 저녁 기자가 이들이 야영하고 있는 보령시 주산면 야룡리 빈터를 찾았을 때 그는 청년한의사회에서 봉사 나온 한의사에게서 뜸과 침을 맞고 있었다.

“처음엔 근육이 아프더라고. 일주일 지나니까 근육은 좀 적응됐는데 이젠 관절이 안 좋아. 그래도 서울까지 가는 데는 아무 문제없어.”

마루와 달리 아스팔트는 절할 때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다. 당연히 뼈에 가해지는 충격은 더 크다. 무릎이 아픈 수경 스님이 기다시피 절을 하는데 문 신부는 단정하게 절을 한다.

“하하, 문 신부도 잠 잘 때는 ‘아이고 아이고’하며 잠꼬대를 연발하던 걸.”

문 신부는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20분간 이동하다가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두 사람은 도로 옆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철퍼덕 누워버린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자원봉사팀이 마실 것 챙기고, 안마하느라 바빠진다.

분위기가 무겁다. 하는 사람은 힘들어서, 보는 사람은 답답하고 안쓰러워서.

불쑥 수경 스님이 문 신부에게 농담을 건넨다.

“머리가 허옇게 셌는데 지금 뭐하는 거야.”

문 신부의 답변이 걸작이다.

“아무리 도로를 살펴봐도 동전 한 닢 없데.”

웃음이 터진다.

인근 성당 신부님들이 아이스크림을 싸들고 찾아왔다. 아침과 점심식사는 군산시 은적사에서 보내왔다. 정성의 손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 김승훈 방상복 신부, 이병철 녹색연합대표 등도 다녀갔다.

수경 스님이 또 한마디 한다.

“이런 호강스러운 3보1배가 어디있어.”

가장 고생하는 사람이 가장 호강스럽다고 하니 다른 사람은 할 말이 없다.

왜 이런 생고생을 할까. 조심스레 물어봤다.

“단지 새만금만이 아니지. 새만금 문제를 만든 사회의 흐름이 문제야. 이번 3보1배가 우리 자신의 삶에 과연 어떤 문제가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해. 결국 우리가 변해야 사회가 변하고, 종교인만이라도 제 노릇을 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텐데….”

남아있던 한줌의 기력마저 소진한 뒤 천주교 동대동성당 웅천공소 앞에 멈췄다. 오늘 묵을 곳이다. 장지영 간사는 “오늘은 좀 낫네요. 어제처럼 완전 야외에서 자면 추워서 몇 번씩 잠에서 깨는데…”라고 말했다.

누군가가 오늘 저녁식사는 ‘특식’이라고 했다. 그들은 우르르 인근 중국집으로 ‘짬뽕’을 먹으러 갔다.

보령=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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