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권준옥 국립보건원 방역 과장

  • 입력 2003년 4월 15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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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전선에서 '사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립보건원 권준욱 방역과장. 그는 "사스보다 앞으로 발생할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들이 더 두렵다"고 말한다. -김동주기자
대한민국 최전선에서 '사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립보건원 권준욱 방역과장. 그는 "사스보다 앞으로 발생할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들이 더 두렵다"고 말한다. -김동주기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고 있지만 한국은 다행히도 아직 발병자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 이유로 김치 속에 든 마늘때문인 지도 모른다고 보도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과연 사스로부터 안전한 것일까. 국립보건원 권준욱(權埈郁·38) 방역과장을 10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보건원에서 만났다.

‘총 17개국 2722명 환자 신고, 그 중 106명 사망, 사스로 의심되는 환자 국내 신고 26건…’이라 적힌 상황판을 배경으로 자료를 뒤적이던 그는 부스스한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괴질 확산 경계령을 내린 지난달 16일 이후 거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한 탓인 듯했다.

“집사람과 딸아이도 보고 싶지만 언제 어디서 환자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끼니도 보통 김밥으로 때웁니다.”

권 과장은 “사스는 발병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적절한 방어수단이 없어서 그렇지 크게 우려할 만한 전염병은 아니다”며 과민반응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돌아가신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사스는 치사율이 4%여서 건강한 사람이라면 크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38도 이상의 고열이 계속되고 마른기침이 나는 등 증세가 나타나면 초기에 치료받으면 됩니다. 손만 잘 씻어도 예방할 수 있고요.”

학자들은 한 세기에 3, 4차례 인플루엔자(유행성 독감)가 원산지격인 아시아, 특히 중국에서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펴졌으며 그 마지막이 1968년 홍콩에서 발생한 인플루엔자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이 또 한 차례 인플루엔자가 내습할 시기이고, 그것이 사스일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1918년 스페인 독감은 1년 만에 당시 세계 인구의 2%에 해당하는 4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런 희생이 있고 난 후 독감에 대한 면역이 생겼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권 과장도 사스보다는 앞으로 끊임없이 인류를 괴롭힐 유사 전염병을 더 걱정했다. 교통의 발달로 위생상태가 불량한 후진국에서 발생한 정체불명의 ‘인수(人獸)공통’ 바이러스가 하루 이틀 사이에 전 세계로 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처음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사스도 ‘괴질’이라 불렀지요. 하지만 앞으로 한 두 개가 아닐 원인모를 전염병들을 ‘괴질Ⅰ, 괴질Ⅱ…’로 이름 지을 수도 없고…. 걱정입니다.”

권 과장은 “생각하기도 싫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도 앞으로 훨씬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전염병이 닥쳐올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기자에게 “미국영화 ‘아웃브레이크’를 봤느냐”고 물었다. 치사율 100%의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아프리카 오지의 마을에서 이 바이러스를 박멸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영화 ‘아웃브레이크’의 주인공 샘 대니얼스 대령(더스틴 호프먼 분)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듯 했다.

권 과장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보건복지부(당시 보건사회부) 공중보건의로 일하면서 콜레라 파동을 겪었고, 복지부 사무관 때는 의료보험수가(酬價) 책정, 보건의료정책과장 시절엔 생명윤리법안 및 의료분쟁조정법 제정 실무 작업 등을 맡아 이 분야에선 안 해본 일이 없다. 그가 처음부터 보건 의료정책에 매달릴 생각은 아니었다.

“의예과 1학년 때였습니다. 맹장수술을 받던 아버지가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에서 사람이 죽어서 나올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의대공부에 회의가 들었고, 의사에 대한 반감도 일었습니다. 수년간의 방황 끝에 환자 몇 명을 고치는 것보다 의료현실을 바로잡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공중보건의로 일할 때 안필준(安弼濬) 당시 보사부장관의 눈에 띄어 92년 방역과 사무관으로 특채됐다. 미국 미시간대 보건대학원에서 3년 반 만에 전염병 관리와 에이즈(AIDS) 역학관리로 박사학위도 받았고 요직이라는 보건의료정책과장도 거쳤다.

14일 권 과장 뒤에 걸린 사스 상황판은 ‘환자 총 20개국 2960명, 119명 사망, 국내 신고 총 28건…’으로 바뀌었다. 나흘 만에 13명이 더 목숨을 잃었고 이웃 일본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 그가 사스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기를 기도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권준옥 과장은 ▼

1965년 서울생

동성고, 연세대 의대(83학번)

1989년 국립보건원, 보건사회부에서 공중보건의 생활

1992년 보사부 방역과 사무관으로 특채됨

1994년 미국 미시간대 보건대학원 유학. 3년 반 만에 석사와 박사학위 취득

1998년 보건복지부 보건자원정책과로 복귀(응급의료 담당)

2000년 복지부 보험급여과(의보수가 담당)

2001년 서기관(4급) 승진

2001년 국립보건원 전염병정보관리과장

2002년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

2002년 12월 보건원 방역과장

가족:부인과 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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