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빌딩계단 오른 박생년씨 "힘들지만 아름다운 고통"

  • 입력 2003년 4월 13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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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계단오르기 우승자 박생년씨. 그는 모두 1251개의 계단을 단 7분15초 만에 올라갔다. -원대연기자
63빌딩 계단오르기 우승자 박생년씨. 그는 모두 1251개의 계단을 단 7분15초 만에 올라갔다. -원대연기자
1240번째 계단, 그리고 다시 1242, 1244, 1246….

딱딱해진 다리에 더 이상 아무 느낌이 없다. 숨이 끊어질 듯하다. 목의 혈관이 모두 터지는 것 같다. “헉헉헉헉….”

6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마지막 1251번째 계단을 밟는 순간 박생년(朴生年·44)씨는 산소호흡기를 찾았다. 심장과 폐가 모두 터질 것 같아 호흡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해발 264m 높이인 63빌딩의 계단을 모두 올라가는 데 걸린 시간은 7분15초. 이날 열린 ‘63빌딩 계단 오르기 대회’에 참가한 남녀 94명 가운데 최고 기록이다.

우승 소감을 묻자 박씨는 “젊은 20대 도전자들을 제치고 1등을 했다는 것이 나도 신기하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사실 꾸준히 체력을 다져온 사람에게도 계단 오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좁은 계단 폭과 지루하게 반복되는 코스, 밀폐된 공간의 답답한 공기는 사람을 더 지치게 한다. 템포를 늦추는 순간 다리와 심장에 몰려오는 피로감도 괴롭기 그지없다.

박씨는 그래서 1251개의 계단을 오르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멈추지 않았다. 계단 2개씩을 한꺼번에 뛰어올랐으니 2초도 안 되는 간격으로 쉼 없이 올라간 셈이다.

“중간에 멈추면 안 됩니다. 멈추는 순간 끝이에요. 정상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력을 다해 뛰는 거죠. 엄청나게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고통이죠.”

박씨의 체력은 20여년간 지속해온 마라톤과 각종 운동으로 다져진 것. 한때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로복서가 되려고 한 적도 있다. 매년 각종 아마추어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수차례 1등을 하기도 했다.

자동차 정비사인 박씨는 요즘도 꾸준히 체력 관리를 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있는 집에서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회사까지 매일 1시간반씩 뛰어서 출퇴근한다. 폐활량이 적다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무장갑을 부는 연습도 꾸준히 했다. 이제 장갑 속에 장갑을 2개나 끼어놓고 불어도 고무장갑을 풍선처럼 부풀게 할 정도가 됐다.

“뛰면 뛸수록 새로운 도전정신이 생겨요. 결국 정신력이거든요. 언젠가는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계단 오르기 대회에도 참가해 볼 겁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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