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뮤지컬 '더 래스트 파이브 이어스'

  • 입력 2003년 4월 8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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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래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사랑하기에 함께 행복했고 사랑하기에 이별의 아픔을 나눠야 했던 두 연인의 사랑이야기를 2인 뮤지컬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사진제공 신시뮤지컬컴퍼니
‘더 래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사랑하기에 함께 행복했고 사랑하기에 이별의 아픔을 나눠야 했던 두 연인의 사랑이야기를 2인 뮤지컬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사진제공
신시뮤지컬컴퍼니
사랑에도 이유가 있고 이별에도 이유가 있다. 하지만 뒤돌아 보면 꼭 그를 사랑해야만 했던 것도 아니고, 반드시 그와 헤어져야만 했던 것도 아니다. 사랑이란 어차피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는 언제나 진부하고 또 언제나 보편적 공감을 낳는다.

뮤지컬 ‘더 래스트 파이브 이어스(The Last 5 Years)’는 뉴욕의 젊은 남녀가 겪는 5년간의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뉴욕을 배경으로 한 젊은 연인들의 사랑’이라는 소재에만 혹해 이 작품을 찾는다면 그 기대가 어긋날 것 같다.

첫째, 자유롭고 ‘자주독립적인’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남자 주인공인 소설가 제이미(성기윤 분)는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야심만만한 ‘출세남’이고 무명 배우인 여자 주인공 캐서린(이혜경 분)은 남자의 성공 곁에서 초라해져 가며 남자의 애정과 관심을 기다리는 ‘순정녀’다. 진부한 1960년대식 발상에 분노하는 여성 관객들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2001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초연된 후 2002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며 꽤 괜찮은 평가를 받은 것을 보면 역시 ‘그렇고 그런 사랑이야기’의 매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젊은 연인들의 예쁘고 감동적인 사랑이야기를 기대한다면 공연 내내 감성적 혼란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이 뮤지컬은 몰입해서 감동을 느끼기 어렵도록 집요하게 방해하는 구성형식을 가지고 있다. 남자는 만남에서 결혼을 거쳐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노래하고, 여자는 이별한 현재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두 연인의 관계를 구성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차피 대부분 연인의 관계란 게 그런 것 아닌가. 이들의 엇갈리는 사랑과 결혼과 이별을 먼발치서 바라보며 관객은 자신의 ‘사랑’을 되돌아 볼 수 있다, 적어도 사랑이란 걸 한 번쯤 해 본 관객이라면.

두 배우의 노래와 연기력에 크게 의존하는 이 뮤지컬은 다행히도 적절한 배우를 만났다. 두 남녀가 주고받는 길고 긴 노래를 들으며 관객들은 배우의 흔들리는 음정에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성기윤의 자신감 넘치는 노래, 춤과 연기는 무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피아노와 현악기의 아름다운 선율이 노래와 함께 90분 동안 물 흐르듯 이어지는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음악은 두 연인의 애증을 섬세하게 표현해 낸다.

5년의 흘러가는 세월을 보여주듯 배우들이 공간을 이동하며 연기하도록 꾸며진 원형의 무대, 덧없이 흘러간 시간과 사랑의 흔적처럼 천장 한가운데 매달린 크고 작은 소품들도 두 연인의 정서를 잘 담아 냈다.

기대하기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는 작품이다. 그에게서 ‘그’를 기대하지 않고, 그에게서 ‘나’를 기대하기에 서글퍼지는 게 우리네 사랑이 아니던가.

4월27일까지. 화 토 일 오후 4시반 7시반, 수 목 금 오후 7시반(월 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3만∼4만원. 02-577-1987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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