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담]다시 고개드는 ‘교포 신랑감’ 선호

  • 입력 2003년 4월 3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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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27·왼쪽):3녀1남 중 장녀. 부산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2000년 가톨릭대 간호대 학사편입해 4학년으로 강남성모병원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실습 중이다.

박덕경(30):2녀1남 중 장녀. 유아 및 어린이 대상 사설 영어교육기관인 주니어 어학원에서 7년 근무. 지금은 문예당에서 수입 서적의 교재 연구를 맡고 있다. 》

요즘 해외교포 남성을 배우자감으로 선호하는 결혼 적령기 여성들이 다시 늘고 있다. 한동안 시들해졌던 현상이 최근 교육문제 등 복합적인 이유로 재현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이미 주요 결혼정보회사들은 교포 남성을 노블레스급 회원으로 특별관리하고 있는가 하면 아예 교포 남성들과 한국 여성들의 만남을 외국 현지에서 주선하는 이벤트도 기획하고 있다.

‘소신과 주관을 갖고 미래를 설계한다’는 여성 두 명이 지난달 31일 만나 90분 동안 배우자로서 교포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한국 남성의 보수성, 이중성

박덕경=제 주변 여성들은 외국에서 살다온 경우가 많은데다 전문직 경력도 많은 탓인지 결혼한 사람이 드물어요. 그래서 저도 서른이라는 나이가 크게 부담되지는 않아요. 교포를 꼭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외국에 유학한 사람과 (재미)교포는 달라요. 부모가 이민을 가서 뿌리를 내린 집의 교포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그 나라 사람이라고 봐야 해요. 이에 반해 유학생들은 외국에서는 상당히 개방적이지만 한국에서 결혼하려 할 때는 폐쇄적이거나 보수적이 되지요.

김미화=언니 말에 공감해요. 짧지만 1년 정도 캐나다와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했는데 어렸을 때 이민을 갔거나 거기서 태어난 사람들은 사고방식도 아주 개방적이에요. 여성을 대할 때도 남녀평등이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 남성들은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여성은 뭔가 좀 사생활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식으로 보죠.

박=그래요. 심지어 유학을 갔다온 남성들조차 곱지 않은 시선으로 여성 유학생을 바라보죠. 상당히 이중적이에요.

김=소수 여성의 행실을 가지고 유학생 여성들은 다 ‘그런 여자’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어요. 제가 유학생과 결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현실적으로 저와 남자의 유학생활 뒷받침을 다 해줄 수 있는 집은 드물잖아요. 현지에서 이미 터를 잡은 사람이라면 내가 나갔을 때 마음도 편할 것 같아요. 간호학과에 입학한 뒤 유학을 생각하면서 배우자로서 교포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1998년 첫 번째 대학을 졸업할 때부터 장녀이기 때문에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요.(웃음) 꿈을 실현하는 데 뒷받침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박=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집안 환경과 학벌이 좋아도 나이가 많으면 결혼하기 어렵잖아요. 결혼을 해도 자기 계발은 더 어렵고요. 직장은 그저 생계수단으로만 생각되고요. 미국이나 서구의 중산층 부부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키워도 무리가 없도록 서로 할 일을 나눠하는 시스템이잖아요. 결혼한 여성의 자기 생활이 가능하지요. 교포들은 그런 문화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결혼해도 여성의 독립적 삶을 이해하고 존경할 수 있다고 봐요. 이런 면에서 한국 남성이 과연 저 같은 여성의 생각을 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요. 농담반 진담반으로 교포와 한번 사귀어 본 여성은 한국 남자랑 잘 못 사귄다고 해요.(웃음) 한국 남성과 근본적 차이점은 문화적이나 언어적으로 완벽하게 통하지는 않지만 여성을 동등하게 대해 준다는 것이에요. 여성의 작은 부분들까지도 존경해 주는 성향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자신과 2세를 위한 꿈

김=자녀에 대한 생각도 해봐요. 미국과 캐나다에서 1년 정도 어학연수를 하면서 교육제도가 참 잘 돼 있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입시지옥’인 우리 교육제도는 제 자녀가 대학에 갈 때까지도 변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자녀들이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자라서 그 사회에서 뿌리내린 뒤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키웠으면 해요.

박=우리는 글짓기 논술 영어학원 등 자녀 사교육비로 한 달에 50만∼100만원이 들어요.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지만 외국인이 수업하는 곳은 몇몇 사립학교 뿐이고요. 자녀의 능력이 발현되는 분야를 키우고 영어와 제2외국어를 가르쳐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인물이 되게 교육하는 게 추세인데 지금 교육제도로는 힘들죠. 자녀가 국제적 감각을 지니고 국제사회에서 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해주고 싶어요.

김=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할 때 과 친구들 절반이 독일로 어학연수를 갔어요. 저는 ‘독일어 공부를 하는 것이 실용적일까’ 고민하다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학연수 1년 가서 그 나라 문화와 사회를 조금 알고 온 것만으로도 인정을 받는 풍토가 신기했어요. 한국에서 영어를 익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건 이미 알지요. 자녀도 한국에서 산다면 틀림없이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고 그렇다고 영어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고…. 그런데 언니는 외국에 가면 직업을 가질 건가요?

박=예술 방면의 공부를 해서 관련 직업을 갖고 싶어요. 꼭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기보다 영어권 국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싱가포르에 세 번 정도 가봤는데 영어를 쓰고 국민도 아시아 계열이라 공감대가 느껴져요. 차별도 별로 없고 환경도 깨끗하고 안전하니까 이곳에서 결혼해서 살아도 좋겠다 싶어요.

김=요즘 미국 간호사시험(NCLEX)을 많이 보잖아요. 저도 간호학 분야가 발전된 곳에서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요. 소아정신 분야도 관심이 가고 미술치료 영역도 알게 됐고요. 한국 간호사들은 병원에 갇혀 사는데 미국에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 한국에 가져오고 싶은 꿈도 있어요. 미국 어느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간호사 생활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가진 과 친구들도 많아요. 외국에 나가서 뜻 맞는 사람 있으면 결혼하겠다는 생각도 많이들 하지요. 저는 제 공부를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이면 더 좋겠죠.

박=제가 대학에 입학(92학번)한 뒤 어학연수 열풍이 불었어요. 주변 환경이 영어 위주로 변하니까 심지어 외국에 안 갔다 온 사람들도 ‘자녀들은 유학 보내야지’ 그러거든요. 남편이 상사나 기업의 외국 주재원으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에필로그

김=한국 남성들은 학연이나 지연, 혈연으로 과거를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교포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좀 불안해요.

박=그래요. 요즘 교포를 무작정 선호하는 여성들이 있다 보니 사기성 짙게 접근하는 교포도 많아요. 한국어를 하면서도 클럽 등에서 여자를 만날 때면 못하는 척하는 거죠. 이들 중엔 부모가 이혼해 가정이 불안정하거나 학력을 속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성들은 자기 주관과 뜻을 가지고 교포를 선호하되 추종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김=저는 교포를 만나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만약 어느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인터넷에서라도 뒷조사를 해보겠지요. 만난 교포가 자신을 부풀려서 이야기한다면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죠. 조건이 좋으면 일단 호감은 가겠지만 내면을 알고 나서 결혼 여부를 결정하겠어요.

박=교포와 이혼한 친구를 봤어요. 교포가 아무리 개방적이고 여성을 존중해도 한국인의 문화와 언어를 다 이해하기는 힘들지요. 문화적으로 충분한 이해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서로 소화하기가 어려워요. 문화적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본인들이 서로 이해하고 감수할 것을 다짐하고 결혼을 해야지 교포를 선호한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접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봐요.

김=부모님은 교포와 결혼하고 싶다니까 어떤 반응을 보이셨어요? 우리 아빠는 일단 외국 나가는 것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세요. 큰딸이니까 더 그러시죠. 엄마가 더 개방적이세요. 엄마는 ‘네가 하고 싶다면 원하는 남성과 어느 나라에서 살든 문제가 없다’고 하시거든요.

박=아버지가 학교 교감이셔서 집안이 상당히 보수적이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교포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 엄마와 이야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큰딸이라 기대치가 높으셨는데 지금은 엄마 세대에 이루지 못한 것이 있으니까 저를 이해하시는 것 같아요.

김=최근 공무원 자녀의 이중국적 시비에다 반미감정도 있어서 교포와 결혼하고 싶다면 괜히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한국 남성도 물론이고 한국 사회를 부정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아요. 대통령도 바뀌었는데….(웃음) 지금 젊은 세대가 앞으로 사회를 이끌 때는 이런 말이 안 나오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이 교포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 사라져서 제가 자녀의 국적으로 주저 없이 한국 국적을 택할 수 있게 되길 바라요.

박=저도 외국에 뿌리내릴 생각은 없어요. 다만 한국의 사회적 교육적 환경이 치유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렇게 될 때까지는 자녀가 이중국적이라면 한국 국적을 포기할 것 같아요. 그러나 오버하는 부시를 싫어한다는 것과 미국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지요. ‘아메리칸 드림’ 같은 것은 없어요.

진행·정리=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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