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전쟁은 인간이 만든 질병… 평화가 건강한 삶 만든다

  • 동아일보

허재택 유엔평화기념관 관장 (전 중앙보훈병원 원장)
허재택 유엔평화기념관 관장 (전 중앙보훈병원 원장)
나는 오랜 시간 인간의 뇌를 들여다보며 살아온 신경외과 의사다.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의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는 순간, 나는 언제나 하나의 사실을 깨닫는다. 생명은 균형 위에 서 있고 건강은 그 균형이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평화라는 사실이다.

몸은 끊임없이 조화를 이루려는 존재다. 세포와 세포는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신경과 호르몬은 보이지 않는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이 미묘한 협력의 질서가 무너질 때 우리는 그것을 질병이라 부른다. 염증은 과도한 방어에서 시작되고 만성질환은 균형을 잃은 삶의 흔적이다. 결국 병이란 평화가 깨진 상태이며 치료란 다시 평화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마음 또한 다르지 않다. 불안과 분노, 지나친 욕망은 신경계를 긴장시키고 호흡을 얕게 만든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몸을 끊임없이 경계 상태로 몰아넣고, 그 결과 면역은 약해지고 회복력은 떨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관계 속에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 있다. 신뢰와 존중이 흐르면 그 관계는 건강하게 유지되지만 오해와 경쟁, 무시가 쌓이면 마치 혈관이 막히듯 소통이 끊어진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관계의 면역력과 같다. 그것은 갈등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스스로 회복하게 만든다. 좋은 관계는 결국 서로를 살리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윈윈’이며 삶을 가볍게 하고 일의 흐름마저 부드럽게 만든다.

나는 병원 밖의 세상에서도 같은 원리를 본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 역시 거대한 생명체와 같다. 이해와 협력이 흐르면 번영이 찾아오고, 불신과 적대가 쌓이면 결국 파괴로 이어진다. 최근 중동의 긴장과 갈등은 이런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질병이다. 그것은 단지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생명과 기억,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무너뜨리는 재앙이다.

나는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중앙보훈병원장을 맡으면서 그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통해 그 참상을 읽어 왔다. 의사로서 나는 확신한다. 평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것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며 생명을 지속시키는 근본적인 원리다. 몸과 마음 안에서, 그리고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평화가 유지될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과 그리고 서로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날 인간의 건강은 한 단계 더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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