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을 위한 책…'인문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등

  • 입력 2003년 3월 7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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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를 맞아 대학 신입생들을 위한 교양서적을 신간 중심으로 모았다. 작년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선정‘우수강의시리즈’의 첫 사례로 꼽힌 김희준 교수의 책 ‘자연과학의 세계’는 거시적인 시각으로 자연과학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 상지대 최종덕 교수의 ‘인문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철학 사회학 물리학 등을 전공한 대학교수 6명이 추천하는 최신 교양서적과 과거의 대학 신입생들이 주로 읽던 교양서적도 함께 소개한다.》

◇인문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최종덕 지음/304쪽 1만5000원 휴머니스트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 책이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저자가 전통적인 인문학의 권역에서만 맴돌던 학자가 아니라 당초 물리학을 공부하다 철학으로 돌아섰고, 그것도 서양철학을 공부하다 동양철학에 접근한 ‘잡종(雜種)’의 학자라는 데 있다.

그는 학부에서 물리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구체적으로는 고전물리학과 미국 분석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두 학문을 통해 세계를 모두 산수와 조립의 대상으로 보게 됐다. 그러나 나중에 독일에 유학해 유럽철학을 접하면서 산수와 조립방식은 존재에 접근하는 수많은 도구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양자역학 공부를 통해 존재와 인식이 서로 얽힌 세계를 엿보았고 이때부터 ‘비연속성과 연속성’을 자신의 철학적 화두로 삼고 동양학의 세계에 접근했다.

디지털은 비연속성의 세계에, 아날로그는 연속성의 세계에 속한다. 단위화되지 않은 아날로그 정보는 오차와 노이즈(noise)를 일으키면서 인식의 혼란을 가져온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이산(離散)적인 단위와 단위 사이에 있는 어떤 존재의 양상을 이쪽 혹은 저쪽의 한 단위에 편입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디지털 정보는 노이즈 발생률을 줄인다.

그러나 아날로그 상태의 자연은 디지털 단위로 변환되면서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금까지 서양의 전통 철학과 과학이 해온 일이다. 저자의 화두는 디지털 정보를 다시 아날로그로 바꾸어 자연의 왜곡되지 않은 원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노이즈가 가득 찬 아날로그라면 굳이 다시 아날로그의 패러다임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 어떻게 하면 노이즈가 상대적으로 적은 아날로그 정보 전달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찾기 위해 저자가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쓴 카프라류의 신과학 사상, ‘반(反)방법론’의 저자인 파이어아벤트류의 역사주의적 과학철학, ‘중국의 과학과 문명’ 시리즈를 낸 니덤류의 동양과학에 대한 새로운 조명, 합리적 이성의 권력을 부정하는 유럽 포스트모더니즘류의 사상이다.

저자는 이들 사상 속에 수렴현상을 보이는 어떤 일관적인 흐름을 지칭해 ‘진화론적 사유구조’라고 부른다. ‘진화론적 사유구조’는 서구 실체론적 세계관의 기저에 있는 존재의 비연속성을 거부한다. 물론 존재의 비연속성을 가정하는 것으로부터 풍요로운 현대 문명의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로부터 인간의 소외와 생태계의 위기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그가 무슨 확고한 결론을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 자신 암중모색(暗中摸索)의 과정에 있는 것이고 그 문제의식 속에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을 뿐이다.

◇자연과학의 세계(전 2권)/김희준 지음/1권 282쪽·2권 301쪽 각권 9800원 궁리

천문학책인가 싶으면 어느새 물리학을 다루고 있고, 물리학책인가 싶으면 화학으로 넘어가 있으며, 화학책인가 싶으면 생물학이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뭉뚱그려 자연과학책이라고 단정해보면 과학사책으로도 보인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단순히 개별 과학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태어난 과학사의 배경과 그 과정에서 이뤄지는 종합적 사고의 전개를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서울대에서 강의를 가장 잘하는 교수로 꼽히고 있는 김희준 교수(화학). ‘서울대의 파인만’으로도 불리는 그는 ‘통합 과학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종전대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묶어놓았을 뿐이지 자연을 거시적으로 한눈에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해주지는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교양과정 학생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과학책이니만큼 간혹 골치 아픈 개념에 마주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고비들을 슬쩍슬쩍 건너뛴다 하더라도 빅뱅(big bang) 우주로부터 현생 인류의 탄생까지를 한눈에 조망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

책은 광자(光子)라는 학생이 과학의 대가 20명과 만나 대화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광자는 허블 망원경의 이름이 유래한 그 허블을 만나 ‘우주의 팽창’으로부터 얘기를 시작한다. ‘우주의 팽창’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려면 불빛의 선스펙트럼과 적색 편이(偏移)에 대해 알아야 한다. 저자는 선스펙트럼이 무엇인지 직접 설명하는 대신 독일의 분젠과 키르히호프가 어떻게 선스펙트럼을 발견하게 됐는지를 들려준다. 이런 식으로 선스펙트럼이 과연 무엇이고, 그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까지 함께 깨닫게 해준다.

천체들을 관찰하다 보면 별빛의 선스펙트럼이 약간 장파장 쪽으로 옮겨진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적색 편이’다. 무지개를 떠올려보면 적색은 긴 파장에 속한다. 소리를 내는 물체가 관찰자에게 접근하면 고음으로 들린다. 접근하니까 크게 들린다는 것은 압축시킨 용수철처럼 파장이 짧아지면서 진동수(frequency)가 높아진다는 뜻이다. 반대로 파장이 긴 쪽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진동수가 낮아진다는 뜻이고, 빛을 내는 물체가 관찰자에게서 멀어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우주의 끝은 지구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

과학의 20세기는 1895년부터 시작됐다. 어떤 의미에서? 1895년은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해다. X선의 발견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광자가 보내는 의문을 따라가다 보면 1901년 첫 번째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뢴트겐으로부터 시작해 20세기에 노벨상을 탄 수많은 과학자들을 거의 모두 만날 수 있고, 그들이 왜 상을 타게 됐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심오한 현대 과학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새내기들이 꼭 읽었으면" 교수들의 추천도서 ▼

학문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디딘 대학 신입생들은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까.

서울대 김상환 교수(철학)는 재미와 깊이가 있는 철학입문서 ‘피노키오의 철학’(양운덕 지음·창작과비평사·2001)과 문학 미술 음악 철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를 개척한 현대 거장들을 소개한 ‘네 정신에 새로운 창을 열어라’(최승호 등 지음·민음사·2002)를 권했다.

계명대 이진우 교수(철학)는 압축성장을 통한 한국의 현대화 과정에서 사회참여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광기의 시대를 생각함’(문부식 지음·삼인, 2002)과 선과 악의 문제가 얼마나 복합적으로 얽혀있는가를 보여주는 ‘선과 악, 그 하나의 뿌리를 찾아서’(안네마리 피퍼 지음·이끌리오·2002)를 꼽았다.

김 교수와 이 교수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과 예술 기술 분야의 최첨단을 소개한 ‘지식의 최전선’(김호기 등 지음·한길사·2002)도 함께 추천했다.

한림대 전상인 교수(사회학)는 우리 옛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여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정옥자 지음·현암사·2003)와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지구화의 발전논리를 추적한 ‘전지구적 변환’(데이비드 헬드 등 지음·창작과비평사·2002)을 꼽았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사회학)는 세계화의 함정을 밝힌 ‘세계화의 덫’(한스 페터 마르틴 등 지음·영림카디널·1998)을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고려대 정재승 교수(물리학)는 물리학 분야에서 최근 5년간 출간된 책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본인이 평가한 ‘E=mc²’(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생각의나무·2001), 식물의 입장에서 본 세상을 기술한 생물학 서적 ‘욕망의 식물학’(마이클 폴란 지음·서울문화사·2002)’과 공학분야의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헨리 페트로스키 지음·지호·1995)를 추천했다.

포항공대 임경순 교수(과학사)는 최근 부각되고 있는 여성과학 분야를 다룬 ‘생명의 느낌’(바버라 매클린톡 지음·양문·2001), 생명공학에 대한 이해깊은 성찰이 담긴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지음·을유문화사·1993)’와 공학분야의 ‘인간을 생각하는 엔지니어링’(유진 퍼거슨 지음·한울, 1998)을 권했다.

과거의 대학생들은 교양서적으로 주로 무슨 책을 읽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60년대 4·19세대와 6·3세대는 문학서적 외에는 번역된 책이 많지 않던 때라 최인훈의 소설 ‘광장’과 잡지 ‘사상계’ 정도를 공통적으로 회상하고 있다.

70년대 유신세대는 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이영희 교수의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잡지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등을 읽었다.

80년대 386세대는 한국 현대사를 역사인식의 전면에 부각시킨 강만길 송건호 등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마르크스철학 입문서인 ‘철학에세이’,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등을 읽고 자랐다.

90년대 신세대는 90년대판 ‘해전사’라고 할 수 있는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해적판으로 돌아다닌 리처드 파인만 교수의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와 같은 책을 선호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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