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준 7단의 결정적장면]"어?흑8"…급소 찔린 돌부처

  • 입력 2003년 3월 2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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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리턴매치로 바둑팬의 관심이 쏠린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전 이창호 9단과 이세돌 3단의 대결은 서로 일합씩을 주고 받아 1 대 1이 됐다. 2년전 2연승 뒤 3연패의 아쉬움을 남겼던 이 3단이 우선 기선을 제압한 1국을 소개한다. 1국은 25일 열렸다.

기자=공교롭게도 1, 2국이 149수로 끝났어요.

김승준 7단=1국은 이 3단이 판을 넓게 짜 흑진에 침입한 백의 특공대를 섬멸한 바둑이고 2국에선 이 9단이 판을 잘게 쪼개 계산 바둑으로 이끌어 승리를 거뒀죠. 1, 2국 모두 서로의 장기를 잘 살렸습니다.

기자=1국에선 이 9단의 우하 백대마가 잡히며 승부가 일찍 결정됐는데요.

김 7단=백 1이 이 9단답지않았어요. 백 1은 흑 2의 급소를 막기 위해 8의 곳으로 좁게 뒀어야 했어요. 이 9단은 답답할 정도로 ‘좁게’ 벌리는 스타일인데 이 장면 만큼은 허점을 노출할 정도로 넓게 벌렸어요. 게다가 백 7로 이은 것이 지나치게 안일한 수였습니다. ‘가’에 붙이는 교란책을 써야 그나마 긴 바둑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대목에서 이 9단의 헛손질이 두 번씩이나 나온 것은 의외라고 할 수 있죠.

기자=이 9단은 “흑 8을 깜빡했다”고 말했는데요.

김 7단=아마추어에겐 어려운 수 같지만 프로들은 쉽게 찾아내는 수 입니다. 이 장면에서 한눈에 떠오르는 급소는 흑 8 아니면 ‘나’ 밖에 없거든요. 이창호라면 흑 8을 당연히 봤어야죠.

기자=이 9단의 심리 상태에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김 7단=대마를 잡으려고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이 3단에게 “네가 아무리 공격해도 난 살 수 있다. 그것도 최대한 버티고 버텨서 살겠다. 네 공격 스타일이 나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라이벌을 확실히 꺾겠다는 기세라고 할 수 있지만 강박관념일 수도 있죠. 그래서 평소처럼 차분한 수읽기가 안된 것 같습니다.

기자=우하 대마가 잡혀서 승부가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후로도 70수 가까이 더 뒀지요.

김 7단=이 9단에게 물어보니 “처음엔 너무 일찍 던지기가 뭐해서 뒀는데 상대가 걸려든 것 같아 계속 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3단의 포위망엔 빈틈이 없었습니다.

기자=이 3단이 2 대 0으로 앞섰어야 이번 결승전이 볼 만해졌을 것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김 7단=하하, 이 9단이 워낙 5번기에 강하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데 1 대 1이 돼 더 아슬아슬해지지 않았습니까. 이 3단도 2년전보다 더 노련해졌으니까요.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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