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중종 묘 주변 러브호텔-룸살롱 난립

  • 입력 2003년 1월 14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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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삼성동 선정릉 정문 주변에 러브호텔촌이 형성돼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권주훈기자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선정릉 정문 주변에 러브호텔촌이 형성돼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권주훈기자
조선 9대 성종과 11대 중종의 묘가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2동 선정릉(사적 제199호) 일대가 환락가로 변하고 있다.

14일 오전 선정릉 주변. 선정릉 정문을 마주보는 곳에는 좁은 2차로 도로를 따라 룸살롱 등 유흥업소가 이미 10개 이상 들어서 있다. 또 정문에서 3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주차장 입구에 가림막을 친 러브호텔 8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가운데 4개는 최근 생겼다. 러브호텔촌 바로 옆에는 어린이집이 있다.

손자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러 온 주민 정모씨(63)는 “아이가 뭘 보고 배울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주민 김모씨(35)도 “대낮부터 고급 승용차가 러브호텔을 들락거린다”며 “선정릉 주변을 산책하는 나이 드신 분들이나 외국인들 대하기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강남구 주민 김모씨는 최근 구 인터넷 홈페이지(www.gangnam.go.kr)에 “선정릉 정문 주변이 러브호텔에 점령돼 대낮인데도 주민들이 다른 길로 돌아갈 정도”라며 “관광객과 학생들이 많이 찾는 문화재를 환락가로 만들 셈이냐”고 항의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현행 법규상 룸살롱과 러브호텔 등이 들어서는 것을 막을 근거가 없어 관할구청은 방관하고 있는 형편.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서울시 도시계획조례에 따르면 주택가나 학교 주변 50m 이내에는 숙박업소가 들어설 수 없게 돼 있지만 문화재에 관해서는 규정이 없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이 지역은 일반상업지역이기 때문에 문화재에 대한 영향평가 심의를 거치면 건축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며 “상업지역에 숙박업소를 짓지 못하게 하면 재산권 침해가 된다”고 말했다.

시 문화재 보호조례는 문화재 주변 100m 이내에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서는 문화재에 대한 영향평가 심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높이 등을 심의할 뿐 건물의 용도와는 무관하다. 법적으로는 국보 1호인 숭례문 옆에 러브호텔을 지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셈.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문화재의 종류와 내용이 워낙 다양해 문화재 주변 건물에 대해 일률적인 기준을 정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재 보존운동 시민단체인 ‘한국의 재발견’ 강임산(姜淋山) 대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문화재 주변의 일정 구역 내에는 환락시설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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