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문학평론]한민주/벅찬기쁨…정열적 도전의 출발선

  • 입력 2002년 12월 31일 16시 11분


한민주
▼당선소감▼

현몽(現夢)이었을까. 얼마 전 한 친구가 신문에서 고딕체로 크게 인쇄된 내 이름을 보고 놀라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우리 둘은 그 꿈을 우스운 해프닝 정도로 넘겼고, 나는 그때 그 친구에게 정말 언젠가 그런 일이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니냐는 소리를 했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내심 아무도 모르게 공모했던 신춘문예의 당선을 속으로 몰래 상상하며 그 비밀을 즐겼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또 잊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즐거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대체나 응축의 수사적 매력도 없이 그 꿈은 그대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정말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기뻤다. 그러나 기쁨이란 항상 불안을 동반하듯, 다시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아직 공부는 부족하고, 갈 길은 멀다.’ 갑자기 마음은 조급해졌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련다.

천운영 소설 ‘등뼈’의 여주인공이 뼈의 살을 세세히 발라내어 먹듯이 그렇게 문학과 인생을 교묘히 교합해 탐식해 가리라. 조급함은 다시 벅차고 들끓는 욕망으로 바뀌었다. 욕망이란 이렇게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어차피 문학이란 것 자체가 불안과 열망이라는 욕망의 두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늘 문학의 자리를 배회하며 떠나지 못하는 자로만 남을까 두려웠던 나의 짝사랑이 이제 이번 당선을 계기로 힘을 얻어 과감하면서도 정열적인 대시를 꿈꾸게 한다. 그날을 위해 나는 열심히 사랑의 기술을 닦아 나가야 할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서툴기만 한 응모작을 꼼꼼히 읽어 주신 심사위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나’라는 주체를 구성하는 데 있어 하나 하나의 요소가 되어준 사람이다. 우선, 이런 즐거운 일을 가능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글을 써주신 작가 천운영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항상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후학들을 긴장하게 만드시는 이재선 선생님, 늘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신 많은 선생님들과 선배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 쉽지 않은 학문의 길을 택했다고 늘 안쓰러워하시던 이젠 고인이 된 아버지와 묵묵히 지켜봐 주는 가족들, 따뜻한 우정으로 위로를 아끼지 않는 친구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1973년 경기 화성 출생 △1996년 건양대 국문과 졸업 △1998년 서강대 국문과 석사 졸업 △2002년 서강대 국문과 박사 과정 수료 △현재 건양대 강사

▼심사평…일관된 논리의 비평적 개입 인상적▼

응모작은 총 17편. 분석단위를 작가 또는 작품에 한정한 작가론 또는 작품론이 주류였다.

구멍 뚫린 거대담론을 농(弄)하는 것도 문제지만 시야(視野)에 대한 감각을 포기한 채 즉물적 작업에만 몰두하는 것은 더 문제다. 대담한 가설과 치밀한 분석을 결합할 줄 아는 신인 평론가의 등장을 지금 한국 평단이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해두고 싶다.

나는 4편의 글에 주목했다. 대석의 ‘넬리 작스의 시 한편에 숨겨진 의미’는 하나의 작품에 집중하여 그 문화사적 추억과 정치적 긴장을 아울러 드러내는 성실성이 돋보이지만, 평론의 생명인 ‘지금 이곳’의 현실성과의 연관이 희미한 게 아쉽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오탁번의 최근 시세계를 해학이란 키워드로 조명한 장은석의 ‘생의 은폐된 비밀을 소환하는 교감주술’은 탄탄한 문장력에 비해 분석은 평범하고 독특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허술하다.

유임하의 ‘고백과 자기점검’은 요절한 작가 김소진론이다. 도시빈민의 일상을 80년대 민중문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집요하게 추적함으로써 90년대 소설의 일반적 경향 바깥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김소진문학의 의의를 잘 짚어냈지만, 문장이 부정확하고 더욱이 해설에 그친 게 안타깝다. 비평은 무엇보다 비판적 독서다.

주목받는 신진작가 천운영을 분석한 한민주의 ‘식(食)의 정치학, 우주적 상상력’은 이 여성작가 특유의 그로테스크미학의 심미적 사회성을 예리한 각도와 일관된 논리로 분석해 내면서 그 한계까지 지적하는 비평적 개입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문장이 더러 부정확하고 페미니즘 밖과 소통하는 시야가 부족한 게 흠이다. 그 때문에 결론도 약해졌다.

나는 유임하와 한민주 사이에서 고민했다. 최종적으로 후자를 선택했다. 최근 우리 사회, 또는 우리 문학의 고민의 현재성에 더 가까이 자리잡고 있는 후자의 비평적 가능성을 평가하고 싶기 때문이다. 축하한다. 아울러 응모자 모두의 정진을 바란다.

최 원 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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