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스님 산사이야기]"오늘은 어제처럼, 내일은 오늘처럼"

  • 입력 2002년 12월 27일 18시 14분


스님이 법당 문을 열듯 매사를 신중하고 진지하게 사는 일이 우리 삶에서는 중요하다./사진제공 현진스님
스님이 법당 문을 열듯 매사를 신중하고 진지하게 사는 일이 우리 삶에서는 중요하다./사진제공 현진스님
작년이던가. 한해가 저무는 그믐날 지대방에 모여 재미 삼아 ‘연하장 콘테스트’를 했다. 뜻밖에도 어느 스님이 내게 보냈던 연하장이 ‘올해의 대상’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그 연하장은 내용은 이랬다.

“가는 년(年) 아쉽고 오는 년(年) 반갑네.”

이 정도면 정말 기막힌 신년 인사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많은 연하장을 받았지만 이처럼 명쾌하고 해학이 넘치는 내용은 보지 못했다. 짧은 한 줄의 내용이지만 지난해의 아쉬움과 함께 새해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이 글귀는 스님들 사이에 히트되어 신년 인사에 ‘패러디’되기도 했는데 올해 업그레이드된 버전은 이렇다.

“이 년(年)이 가면 새 년(年)이 오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같은 내용은 친구나 동료에게 보내기는 적절하나 웃어른에게 전하는 연하장에 쓴다면 방망이를 맞을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덧붙인다.

사실 매년 연하장을 보낼 때마다 내가 즐겨 쓰는 글귀는 따로 있다. 올해도 이 글귀를 붓글씨로 써서 지인(知人)들에게 보냈다.

“오늘은 어제처럼, 내일은 오늘처럼 사소서!”

언뜻 들으면 도약이나 희망이 없는 말처럼 느껴지지만 무사(無事)와 평안을 기원하는 뜻이다.

인생의 시제는 늘 ‘현재’여야 하고 삶의 중심은 언제나 ‘오늘’이어야 한다. 과거는 지나간 오늘이며, 내일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오늘이다. 그러므로 실존을 통해 현실을 자각할 때 비로소 주체적 삶이 열린다. 즉 시들시들한 과거의 삶이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현재의 삶을 이끌어 가라는 새해의 축원이다.

정말로 살아 있을 때는 삶 그 자체가 전부가 되어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내일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나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 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공상에 잠 못 이루거나 꿈을 꾸지 말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일이 미련 없는 삶이다.

해인사 포교국장 buddha12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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