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시대 문화계 전망 "性-사상 표현수위 더 높아질 듯"

  • 입력 2002년 12월 24일 17시 56분


올해 1월 스크린쿼터 축소 및 한미투자협정 반대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는 영화인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스크린쿼터를 현행대로 유지하고 세계무역기구(WTO) 문화분야 양허요청안을 재조정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올해 1월 스크린쿼터 축소 및 한미투자협정 반대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는 영화인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스크린쿼터를 현행대로 유지하고 세계무역기구(WTO) 문화분야 양허요청안을 재조정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문화정책은 자율성 확대와 공공성 강화라는 일견 모순되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힘든 줄타기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과 사상에 관한 표현의 자유는 크게 확대될 것으로 문화계에서는 보고 있다. 그동안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등 문화단체에서는 ‘포르노 영화관’의 설치요건이나 영상물 등급판정의 완화, 국가보안법 등에 따른 사상적 제약의 완화 등에 관심을 보였고 노 당선자는 총론적으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구체적으로 국가보안법은 폐지 후 대체입법화하고, 청소년보호법 전기통신사업법 형법 등의 문제조항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정하는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 정책과 관련, 노 당선자는 투표권 연령을 포함해 청소년 기준연령 18세 통합조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각 법령이 정하는 청소년 연령은 18세부터 20세까지 다양하다.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는 노 당선자는 내년 총선 전까지 만 18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방향의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개방이나 언론 방송과 관련해서는 자율성보다는 공공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이 추진돼 적잖은 진통이 뒤따를 전망이다. 또 인터넷 언론이 ‘제도권’으로 진입하면서 새 정부의 각종 시책을 지원 받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노 당선자는 이미 대선 TV토론에서 세계무역기구(WTO) 문화분야 양허요청안과 관련, 철회는 어렵지만 재조정이 가능하고 실제로 재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표현했다. 또 논란이 되고 있는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 제도)는 현행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스크린쿼터 유지나 WTO 문화분야 양허요청안 재조정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문화작가회의’ 등에서 강력히 주장해온 것으로 문화개방정책과 관련해 ‘민족적인 것’을 우선시해 온 민예총이나 민족문화작가회의 쪽 입김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는 또 방송사의 공공성에 무게를 두면서 민영화에 반대하고 있다. 그는 KBS2와 MBC 민영화 주장과 관련해 “이 문제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성과 공정성이며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지금 민영방송보다 훨씬 떨어진다면 민영화를 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민영화를 서두를 일이 아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종교계도 노 후보의 당선으로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正大) 스님이 동국대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함에 따라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는 수덕사 주지 법장(法長) 스님과 관음사 주지 종하(鍾夏) 스님 사이의 물밑 경쟁에서도 현 주류 쪽이 지지하는 종하 스님이 힘을 받게 됐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당선됐다면 이 후보측과 관계가 깊은 법장 스님이 유리해졌을 것으로 불교계에서는 보고 있다.

개신교나 가톨릭계에서는 김대중 정부식 개혁을 지지해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나 ‘정의구현사제단’등 자유주의적 신학 진영의 영향력이 계속 발휘될 전망이다.

노 후보의 당선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이끈 영화배우 문성근 명계남씨의 앞으로의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 당선자는 그러나 대선 운동 기간 중 동아일보 부장단과의 합동 인터뷰에서 “그들이 내게 어떤 자리를 요구한 적도 없고, 그들을 공직에 등용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문화계 일각에서는 노 당선자의 ‘문화 후원 세력’이 자신들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몸을 낮출 것’이라는 견해와 공직에 나서지는 않으면서 막후에서 새 정부의 문화 정책과 인재 등용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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