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 교수의 웃음의 인생학]“아끼라 아끼라 했거늘…”

  • 입력 2002년 12월 11일 17시 44분


도척은 중국에서는 의적(義賊)이다. 한데 우리나라에선 구두쇠의 병명이 되어 버렸다. “형제간에도 나눠 먹지 않다니! 이 도척 같은 놈!” 이건, 놀부가 들어서 싼 욕이다.

구두쇠 도척은 돈을 꽤나 많이 모았다. 천석꾼, 부자로도 이름이 잘 알려졌는데 그를 흠모해서는 돈에 기갈이 든, 어느 젊은이가 찾아 왔다.

“부디 바라건대, 돈 모으는 길을 일러주십시오!”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도척은 가르침에도 인색했다. 청년은 석 삼 년을 두고 매일 나타나서는 애걸하고 복걸했다.

마침내 도척 선생의 마음이 움직였다.

앞장을 서서는 높은 산에 올라갔다. 꼭대기 절벽 가에서 멈추더니 젊은이더러 소나무를 타고 오르라고 했다. 나무는 절벽 끝에서 하늘로 뻗어 있었다. 돈에 눈이 어둔 젊은이는 나무를 거침없이 타고 올랐다.

웬만큼 올랐는데 도척은 한 수 더 떴다. 절벽바깥으로 내뻗은 가지를 타고 나가라고 했다. 청년이 원숭이처럼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는데, 웬걸 가지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는 몸을 허공에 늘어뜨리라고 했다.

“돈아! 날 살려라!” 청년은 지엄한 분부를 따랐다. 한데 갈수록 태산! 대롱대롱 절벽 끝 허공에서 가지에 매달린 녀석에게 한 팔 놓으라고 했다.

“돈 귀신 너만 믿는다!” 외팔로 솔가지를 잡은 녀석의 몸이 갈잎처럼 흔들댔다.

“알겠냐? 이 놈! 돈 붙들기를 그같이 하라!”

가르침을 따른 청년은 십 년 새에 백석 지기, 부자가 되어 있었다.

마침 설을 맞아서 그동안 모른 척하고 멀리한 스승에게 세찬(歲饌)을 보내기로 했다.

도척을 찾아간 하인은 주인이 시킨 대로 ‘굴비 머리, 열 개를 드립니다’라고 했다.

한데 도척이 대노하면서 소리쳤다. “굴비 머리 열 개면 열 개지, 줄을 꿰어서 보내는 낭비는 왜 하느냐고 네 주인에게 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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