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강월도씨가 남긴 뒷얘기

  • 입력 2002년 9월 17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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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강월도씨

생전의 강월도씨

지난달 21일 바다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진 시인이자 철학자 강월도씨(본명 姜旭·66·전 한성대 교수)가 동료 교수들과 나눈 애틋한 사연이 뒤늦게 전해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강씨가 재직했던 한성대의 정대홍 교무과장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강 교수가 지난해 퇴직한 뒤 어렵다는 말을 듣고, 한성대 교수상조회에서 모금해 7월에 710여만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정성’을 건네 받은 강씨는 이들에게 ‘기쁘기도 하고 동시에 당혹했다. 이러한 배려 깊은 선물을 넙죽 받을 수 있는지 가슴이 무겁다’는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강씨는 그 편지를 동아일보 문화부에 보내기도 했다.

퇴직과 함께 강씨는 소장하고 있던 책을 한성대 도서관에 기증했다. 도서관장인 영문학과 고정자 교수는 기증 문제로 강씨의 퇴직 뒤에도 연락을 주고 받았다.

“재작년 강 교수가 살던, 서울 성북동에 있는 반지하방이 장마로 물이 차 더 이상 그곳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됐다. 그때 그와 친분이 깊던 작가 조병화씨가 혜화동에 있는 자신의 소유 건물 지하를 내줬다. 그 곳이 디지미술관 겸 그의 집이었다.”

조병화씨는 디지미술관 건물의 2층을 쓰고 있는 조유현 늘봄출판사 사장으로부터 강씨의 실종소식을 전해들은 뒤 1998년 자신이 직접 쓴 ‘철학교수 강 박사의 죽음’이라는 시를 맨 먼저 꺼내 들었다.

‘어느날 나의 철학으로 견디던 끝날/ 썰물에 배를 밀고 바다 한가운데로/ 술을 마시며 나갈 겁니다’

조유현씨는 “강씨가 오래전부터 현해탄에 뛰어들었던 윤심덕처럼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말해 그의 투신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디지미술관 문앞에는 현재 ‘휴관’을 알리는 낡은 종이와 그 낡은 종이 위에 ‘선생님을 좋아했던 제자’가 볼펜으로 흘려쓴 편지만 남아 있다.

‘힘드신 줄 알면서도 끝까지 함께 해 드리질 못했군요. 부디 깊은 심연 속에서도 저희를 잊지 마시고 아무도 간섭않는 안식을 누리십시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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