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철인3종경기 참가 철녀들의 모임 '여성철우회'

  • 입력 2002년 7월 11일 16시 17분


서울 워커힐호텔부터 경기도 팔당대교까지 사이클링 연습에 나선여성철우회 회원들 [사진=전영한기자]
서울 워커힐호텔부터 경기도 팔당대교까지 사이클링 연습에 나선
여성철우회 회원들 [사진=전영한기자]

《태평양의 산호초 섬인

일본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

매년 4월 세계 각국에서

1500명 이상의 선수가

몰려드는 철인 3종 경기

‘스트롱맨 대회’ 장소로

유명하다.

해안 절벽과 비취빛 바다,

새하얀 모래가 이뤄내는

절경은 14시간 내에

수영 3㎞, 사이클 155㎞,

마라톤 42.195㎞를

완주해야 하는 극한

고통을 덜어준다.

그러나 올해 참가자들은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철인3종 경기의 국내 여성

1인자로 꼽히는 김정숙씨

(32·일본어 강사) 역시

그랬다.

바닷물로 뛰어들자

높은 파도가 일었다.

전날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팔을 뻗어도

뒤로 밀리는 것만 같았다.

결국 일본인 남성 참가자

2명이 물 속에서 숨졌다.》

이를 악물고 수영을 끝내자 어깨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섭씨 30도가 넘는 섬을 자전거로 한 바퀴 반 도는 동안에는 말라붙은 바닷물의 소금기가 피부병 앓은 살갗을 찔러댔다. 허리와 허벅지에 아무런 감각이 없어 쓰러져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마라톤 출발점이 보였다. 달리는 도중 여기저기서 앰뷸런스 소리가 쉴 새 없었다. 35㎞를 넘어설 무렵 발가락에 난 물집들이 터져 양말이 피로 얼룩졌다. 결승점에 들어온 뒤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죽은 발톱을 떼내는 것이었다. 기록 11시간 11분 29초. 수십명의 한국인 남성 참가자 중 단 3명만이 그녀를 앞질렀다.

그녀가 코스 도중 남성들을 추월하면 치열한 근접전이 벌어질 때가 있다. 여성한테는 절대 지지 않겠다는 남성 참가자들의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철인 3종 경기 입문 13년째인 그녀는 이런 식의 승부욕을 떨친 지 오래다. “달리면 달릴수록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경기에 나선다는 결론이 서더군요. 내 속에 든 나약한 나와의 경주 말이에요.”

6월 말 김씨와 더불어 여성 철인 3종 경기 참가자들의 모임 ‘여성 철우회(女性鐵友會)’를 결성한 이들의 공통점도 바로 그것이다. 14명 창단멤버의 머릿속에는 정통 철인 3종 경기인 ‘아이언맨 대회’를 만든 존 콜린스의 말이 박혀있다.

“네가 계속 달리면 너는 이길 수 있다. 그러나 네가 멈추면 너는 패배한다(If you go on, you can win. If you stop, you lose).”

김씨와 함께 미야코지마 대회를 완주했던 이 모임 간사 이영숙씨(38·과외 강사)는 “철인 3종을 통해 스러져 가던 나 자신을 재건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열성적이었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정치적 좌절’을 겪었다. 미혼으로 서른을 훌쩍 넘기고 나자 사회에 적응 못한 낙오자가 된 듯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강변을 뛰는 사람들을 보고는 아무 생각 없이 함께 10㎞를 달렸다. 그녀 나이 서른다섯살, 99년 1월의 일이다. 그녀는 “몸부터 튼튼하게 해 피폐해진 정신을 일으켜 세우자는 생각이 불처럼 일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1주 14시간 이상씩 역기와 덤벨을 들었고, 길을 달렸다. 수영과 사이클링을 새로 배웠다. 철인 3종 경기 대회 참가를 위해서다. 마라톤 도중 근육 마비가 와서 다리 절고 눈물을 삼키며 나머지 10㎞를 완주한 적도 있다.

이씨는 최근 1년간 뉴질랜드 아이언맨 대회 등 철인 3종 경기에 3차례 참가해 모두 완주했다. 키 1m63의 호리호리한 몸매인 그녀는 이제 윗몸일으키기를 한 번에 300번씩 하고, 웬만한 책상 하나는 혼자서 들어 옮긴다. ‘슈퍼우먼’이 된 것이다. 올해 3월에는 철인 3종 경기 대회에서 만난 길천재씨(44)와 결혼했다. 이씨의 혼수품은 사이클 한 대. 두 사람은 앞으로 매년 세계 곳곳의 철인 3종 경기에 함께 도전할 생각이다.

여성 철우회에는 마흔 넘은 사람들도 있다. 회장 전명희씨(42·사업)가 그렇다. 사이클링을 9년간 했으며 철인 3종 경기는 지난해 6월 제주 아이언맨 대회 때 처음 도전해서 완주했다. 아이언맨 대회는 스트롱맨 대회와 같은 철인 3종 경기지만 거리가 조금 다르다. 수영 3.9㎞, 사이클 180㎞, 마라톤 42.195㎞다.

전씨는 불혹을 넘긴 철인(鐵人)답게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먼 길을 가려면 사소한 준비부터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초보자들에게 마라톤 팬츠의 바느질부터 꼼꼼히 챙겨보라고 충고한다. 솔기 처리가 잘못 되면 뛰는 내내 고통을 준다. 양쪽 겨드랑이와 허벅지에는 바셀린을 발라둬야 한다. 경기 도중 수만번씩 살갗이 스치면서 생각지도 못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이나 땀이 이마로 흐르지 않도록 기능성 스카프를 하는 것도 요령이다. 사이클 역시 안장 페달 핸들 모두 자기 몸의 특성에 맞춰서 미세한 부분까지 조정해둬야 한다.

이처럼 준비를 철저히 하는 이유에 대해 전씨는 “즐겁게 달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남과의 승부에 너무 매달리는 것도 준비가 덜 된 탓이지요. 마음의 준비 말입니다. 경쟁만 생각하다가는 경기 자체의 즐거움을 놓칩니다. 경기 때는 자기 자신만 이겨내면 됩니다. 그것이 삶을 즐기고 인생에서 승리하는 힘이 아닐까요.”

육체적 철인(鐵人)이 되는 과정은 정신적 철인(哲人)이 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철인 코스’에는 언제 어떻게 뛰어드는 게 좋을까. 회원들은 “해야 되겠다 싶을 때 단박에 시작하라”고 말했다. 이영숙씨는 “99년 1월 10㎞ 달리기에서 내가 약하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골초처럼 피워댔던 담배를 단번에 끊어버렸다”고 말했다.

열살, 아홉살 연년생인 두 아들의 엄마인 이성희씨(33·농협 금촌지부 과장)는 한술 더 뜬 경우다.

“99년 10월 직장에서 일하다가 초등학생이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학창 시절 달리기를 못해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지요. ‘그래 지금 당장 시작하자’고 생각했습니다. 퇴근 직전에 운동화를 샀습니다. 차도 내버려 둔 채 집까지 8㎞ 거리를 달렸지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녀는 지난해 6월 제주 아이언맨 대회 때 처음으로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했다. 그 이전까지 마라톤은 완주한 적이 있었지만, 바닷물 3.9㎞, 사이클 180㎞ 경험은 한번도 없었다. 일은 저지르고 봐야 하는 것이다.권기태기자 kkt@donga.com

●철인 3종 경기란

‘철인 3종 경기’는 미국 해군 중령 존 콜린스 등이 1977년 미국 호놀룰루에서 시작한 ‘아이언맨 트라이애슬론(Ironman Triathlon)’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수영 사이클 마라톤 선수 중 누가 체력적으로 탁월한지 입씨름을 벌이다가 실제 경기로 자웅을 겨뤘다. 이 경기를 계기로 미국에는 세계트라이애슬론경기연맹(WTC)이 생겨나 수영 3.9㎞-사이클 180㎞-마라톤 42.195㎞를 순서대로 완주하는 철인 3종 경기를 상업화했다. 수영 골인점까지 2시간15분에, 사이클 골인점까지 10시간반에, 마라톤 및 최종 골인점까지 17시간에 들어오는 이들에게 기록증과 함께 철인(Ironman) 칭호를 부여한다.

철인 3종 경기는 수영 1.5㎞-사이클 40㎞-달리기 10㎞로 이뤄진 올림픽 코스로 변형돼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공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여성은 스위스의 브리기테 맥마흔이 2시간40초에, 남성은 캐나다의 시몬 휘트필드가 1시간47분45초에 완주해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올림픽 코스의 절반씩을 소화하는 스프린트 코스, 또 그 절반을 소화하는 슈퍼 스프린트 코스 등도 생겨났다. 한편 일본 미야코지마의 스트롱맨 대회 등은 WTC와는 별개의 대회다. 국내의 철인 3종 경기 대회로는 대한트라이애슬론경기연맹이 마련하는 속초 아이언맨 코리아 대회(8월25일) 통영 올림픽코스 및 슈퍼 스트린트 코스 대회(7월21일) 등이 있다. 아이언맨 코리아 대회 상위 50위 안에 든 이들에게는 세계 최강자를 뽑는 10월 하와이 코나 대회 출전권이 주어진다.

대한트라이애슬론경기연맹 홈페이지(triathlon.or.kr)로 들어가면 전국 각종 클럽이 소개돼있다. 초보자들은 가까운 곳을 선택해 가입 신청을 할 수 있다.

철인 3종 경기의 장비비용은 제법 든다. 사이클은 미국산 캐논 데일이 널리 쓰이는데 300만원대이며, 고무로 만든 미국산 수영복 ‘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