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교과서도 문제" 국내사학자 자성의 목소리

  • 입력 2002년 4월 18일 18시 16분


국사 교과서에서 5·16을 혼란에서 안정으로 가는 과정으로 묘사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사 교과서에서 5·16을 혼란에서 안정으로 가는
과정으로 묘사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일관계 등을 왜곡한 일본의 고교 역사 교과서인 ‘최신 일본사’가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해 반일 감정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역사 교과서에도 문제가 있다”는 자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리 교과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최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화해와 반성을 위한 동아시아 역사 인식’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과 지난해 5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무엇이 문제인가’ 강연회 등에서 산발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특히 계간 ‘당대비평’ 최근호가 ‘역사리포트 1- 기억과 역사의 투쟁’에서 ‘내셔널 히스토리(국가주의·국민사·국민의 역사 등을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 눈길을 끌고있다.

공주대 역사교육과 지수걸 교수는 ‘민족과 근대의 이중주’에서 한국의 국정교과서인 ‘고등학교 국사’(이하 국사)가 ‘우리(나라 혹은 민족)’라는 모호한 용어로 단일민족국가론을 정당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사 교과서가 국가 민족사의 서술방법으로 발전적 객관적 관점을 강조하지만 ‘우리’라는 용어의 빈번한 사용으로 실제 서술은 과거와 현실의 국가와 민족을 초현실화하는 혐의가 짙다는 것.

지수걸 교수

“모든 위기는 ‘국가 민족 위기’이며 그 극복 주체도 항상 ‘우리나라’ ‘우리민족’으로 초역사화 신성화하면서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정당화하고 있다. 국가(민족)는 위기의 성격을 그 구성원들에게 강요하기 위해 ‘국가’ ‘정권’ ‘사회’의 위기를 구별하지 않고 ‘민족’의 위기로 규정했다.”

그는 ‘조국 광복을 우리의 손으로 쟁취하기 위해 국내로 진입해 일본군과 전면전을 전개할 것을 계획했다’(국사 하 160쪽)거나 ‘1945년 조국 광복은…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전개한 독립운동의 결과였다’(국사 하 187쪽)는 설명 등은 오로지 영광된 조국과 민족의 과거와 미래를 강조하기 위해 모순의 현실을 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롭게 등장하는 모든 국가 권력(정권)이 내재적 역사 발전 과정, 즉 혼란에서 안정으로 가는 과정으로 합리화하고 있다고 보았다. 박정희 정권의 성립을 ‘…자제할 줄 모르는 일부 국민들의 과도한 욕구 분출로…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이 지속되었다’며 장면 정권의 사회상을 설명(국사 하 204쪽)한 뒤 ‘1961년 5월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부세력이 사회적인 무질서와 혼란을 구실로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됐다’고 당위성을 부여했다는 것. 이는 다른 정권에도 그대로 적용됐다고 지적한다.

이밖에도 지 교수는 국사 교과서가 민족의 대단결 혹은 민족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기 위해 현실의 적을 과장하거나 일제하에서 이뤄진 ‘식민지적 근대’와는 달리 미국의 영향 가운데 진전된 근대는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지적했다.

그는 “조국과 민족의 이름으로 범해진 반민중적인 범죄와 오류, 한국적 근대화의 실상과 허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역사교육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윤해동 교수

서울대 국사학과 강사인 윤해동씨도 ‘동아시아 역사논쟁과 국민국가’에서 자민족 중심주의를 탈피해 성찰적 동아시아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74년부터 시행된 국정 교과서가 자국 중심주의적 성격을 가졌을 뿐 아니라 국가독점체제로 교과서를 물신화하는 경향을 낳았다”며 “역사 해석의 다원화 경향을 수용하고 교육현장에서 자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국사 교과서의 자유 발행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982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당시 한국 일본 중국이 합의한 ‘근린제국조항’(동아시아의 이해와 국제협조의 견지에서 필요한 만큼 배려한다)는 역사 인식에 있어 장족의 진전이었다”면서 “하지만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1차적으로 일본 사회의 문제”라고 말했다. 주변국가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기 사회에 대한 성찰을 통해 민주화의 역량을 제고하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인류의 보편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

윤씨는 한국의 국사 교과서 역시 자국 중심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일본의 잠재적 황국사관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의 근대사를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역사학계가 국가 민족 중심주의에서 정체돼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민족-국가주의 교육을 강화하는 식의 국가주의적 대응으로는 일본의 우경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결국 우리 스스로의 비판과 성찰이 동반돼야 한다는 얘기다.

‘당대비평’의 문부식 주간은 “우리는 일본인들의 망언을 비판하면서도 우리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식의 자기 중심적인 역사관에 대한 반성이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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