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인터뷰]CAN "우린 온실속 스타가 아니야"

  • 입력 2002년 2월 26일 16시 43분


《요즘 방송가에서 ‘캐스팅 1순위’로 꼽히는 ‘CAN’(이종원·배기성)은 몸을 던져 시청자들을 웃긴다. 그러나 그들은 10여년간 무명 시절을 보냈다. 그들에게 초라했던 10년과 화려한 요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 이종원…부모마저 벌레보듯

집에서 나는 ‘벌레’로 불렸다. 대학졸업 후 수년동안 수입 없이 음반사를 전전하던 내 모습이 오죽이나 안타깝고 미웠으면 그랬을까.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의 미래가 풀리지 않자 몹시 원망하셨다.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취직시키겠다”며 30개 회사의 지원서를 들고 오시기도 했다.

그러나 내게 음악은 목숨만큼 절박했다. 아예 부모가 취직은 상상도 못하게끔 나는 파마를 하고 팔에 문신까지 했다. 집안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독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어느날 길에서 친구와 걸어가던 어머니를 만났다. 내가 멀리서 아는 척을 했지만 어머니는 긴 파마머리에 반지 귀고리 목걸이를 한 내 모습이 창피하셨는지 못 본 척 다른 쪽으로 가시는 게 아닌가. 화가 나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뒤로 그 일에 대해 나는 한번도 서운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 배기성…눈물의 미사리카페

종원이 형에 비하면 내 음악생활은 출발이 좋았다. 남들은 재수 삼수까지 한다는 MBC 대학가요제에 응모해 첫해 은상을 차지한 것이다(93년). 11개 기획사에서 제의가 들어왔고 하나를 골라 음반을 냈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1년쯤 쉬다가 다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획사를 찾아다녔다. 11개중 한 군데 쯤은 나를 기억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착각이었다.

미사리 카페촌에서 노래를 부르기까지는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다. 화려했던 출발이 나 자신을 낮추는데 방해가 됐다. 언젠가 노래를 부르는데 한 취객이 “시끄럽다”며 포크를 내게 집어던졌다. 속에서 피눈물이 났지만 모른 척 노래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감자탕을 즐겨먹지 않는다. 미사리 시절 괴로운 마음에 거의 매일 친구들 불러내 감자탕에 소주를 마셨다. 어느날인가 잠에서 깼는데 입에서 돼지 비린내가 날 지경이었으니….

# CAN…이제는 인생의 봄날

요즘은 일주일 내내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최근 발표한 ‘내 생애 봄날은…’으로 인기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고생 끝에 찾아온 인기의 소중함을 아는 우리는 어느 프로에서든 몸을 던져 열심히 한다. 설 때는 무려 11개의 특집 프로에 출연했고 라디오 프로와 고정출연 프로를 합치면 20개는 될 것이다. ‘이러다 죽겠다’ 싶을 만큼 너무 바쁘고 힘들었다.

2월 3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게릴라 콘서트’에 출연하면서 우리는 무명시절의 기억을 하나씩 되새겨보게 됐다. 안대를 벗는 순간까지 5000명이나 우리 공연을 보러와줄지 자신이 없었다. 7000명이 빽빽이 들어찬 모습을 보는 순간 설움과 원망 고마움이 동시에 복받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그 뒤 녹화 테잎을 5번이나 봤고 볼 때마다 울었다.

이제는 부모님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들이 돼 기쁘다. 이제는 방송 모니터까지 꼼꼼히 하신다. 우리 노래의 가사처럼, 내 생애 봄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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