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의 아들에게 띄우는 편지 "순간순간에 충실하거라"

  • 입력 2002년 2월 19일 15시 46분


롯데그룹 기업문화실 이동진(李東進·53) 이사는 18개월 전 아들 경훈(京勳·23)씨가 입대하자 22통의 편지를 훈련소에 있는 아들에게 보냈다. 자식이 커서 어른이 되더라도 부모에게는 염려의 대상일 뿐. 이 이사의 편지 곳곳에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배어 있다. 물론 세상살이에 대한 당부도 담겨 있다. 그의 편지 가운데 하나를 발췌해 소개한다.

경훈아.

네가 국민의 도리인 국방 의무에 충실하고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면서 소중한 경험을 체득하고 있을 것이라는 대견함에 엄마와 나는 기쁜 마음이란다.

사람이 인생을 사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접하며 다양한 삶을 소화해내는 것이지. 군이야말로 이런 기회를 주는 소중한 터전이란다.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삶을 살찌우고 인간성을 단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아버지는 네가 능히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경훈아.

사는데 혼자일 수 없듯 주위 사람들과 교류하며 의지하고 산다는 건 참 아름다운 것이다. 그곳에는 전국에서 모인 장정들이 각자 새로운 공동체에 적응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부지런히 사귀어 그 사람의 이모저모를 읽으면서 삶의 두께를 더해 가길 바란다. 다만, 사람을 쉽게 판단해 맞서지 않고 늘 먼저 양보하는 너그러움을 갖춘 아들이 되기를 아버지는 기대한다.

경훈아.

조직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평소 느끼지 못한 기억들이 떠오르곤 하지. 잊고 지내온 일상의 고마움을 깨닫는단다. 모름지기 추억을 곱게 간직하고 자주 기억해 내는 노력은 생활을 의미 있게 꾸리는 데 큰 힘이 된다. 아름답고 기쁜 기억만을 간직하고 궂고 추한 기억일랑 쉽게 잊는 버릇을 키우면서 오늘도 좋은 추억 만들기에 노력하길 바란다.

경훈아.

순간 순간에 충실하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기 마련이다. 훈련을 앞두고 걱정도 하리라 보지만 직접 맞닥뜨려 훈련에 몰두하다 보면 괜한 걱정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게다. 다가올 것에 대한 우려나 두려움을 떨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자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 다오.

마냥 보고 싶은 경훈아.

아버지도 전에는 몰랐는데 너를 떠나 보내고 나니 너와 함께 한 기억들이 얼마나 소중히 다가오는 지 모르겠다. 엄마와 아버지는 아마도 네가 우리를 보고 싶어하는 것 이상으로 그리움에 젖어 있단다. 누구를 그리워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구나. 조만간 구릿빛 늠름한 모습의 아들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2000년 9월 3일 늦은 밤에.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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