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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월 4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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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역사학자인 남자 D와 영문과 대학원생인 여자 A의 사랑 이야기 안에, 이들이 자신의 사랑을 비춰보는 거울로 서양 중세의 역사적 사실인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비극적 사랑이 등장한다. 또한 D의 대학강의라는 형식을 빌려 역사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함을 이론적으로 서술한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D와, D의 틀에서 조금 벗어나려 하는 A의 사소한 말다툼으로 둘 사이의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다 수도사와 수녀가 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들의 사랑을 반성한다. 저자는 사료의 해석에 따라 아벨라르가 엘로이즈를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볼 수도 있고,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며 역사 해석의 개방성을 보여준다. 완전한 사랑을 꿈꾸는 D는 고민 끝에 A와 동반자살을 택한다.
▽김기봉〓이 책은 독특합니다. 사랑이야기라는 소설 구조 안에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비극적 사랑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역사학 강의가 뒤섞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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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역사는 현재를 비춰보며 교훈을 얻는 거울입니다. 하지만 그 거울이 역사가의 편견에 의해 잘못 만들어졌거나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비춰볼 수 없을 경우 거울 자체가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쓴 것은 이 점을 독자들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김 교수님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푸른역사·2000)에서 포스트모던 역사학을 이론적으로 밝히셨다면, 저는 이번에 그것을 좀더 실천적으로 보여준 셈이지요.
▽김기〓비역사가가 역사를 소설로 만든 것이 ‘역사소설’이라면, 역사가가 소설 형식을 빌려 서술한 것은 ‘소설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역사서술 방식이지요. 중요한 것은 종래 역사학에서 취급하지 않았던 주제인 사랑을 역사학의 대상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입니다. E H 카가 역사를 과학으로 풀려했다면, 김현식은 역사를 사랑으로 풀어보려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김현〓이 책에서 시도한 또 하나의 방식은 ‘주체의 죽음’이라는 방식입니다. 역사가의 이해에 따라 독자에게 역사를 설명해 주는 게 아니라 독자가 능동적 독서를 통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이 읽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도 그 때문이지요.
▽김기〓‘사랑은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D의 목소리가 강한 것이나, 결국 절대적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 D가 A와 죽음을 택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주체’의 목소리가 강하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적 성격을 탈피하지는 못한 듯합니다.
▽김현〓이 책에는 역사가도 없고, 주인공인 D도 결국 A와 함께 죽습니다. 능동적 글읽기를 하는 독자와 글만 남는 것이지요. 역사학이란 근본적으로 해석의 무한성에 기초한 ‘열린 우주’임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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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형식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이지만 내용은 여전히 모던하거나 진부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분명히 절대적이고 영원한 사랑, 즉 모더니즘적 사랑을 추구합니다.
▽김현〓‘절대적이고 영원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은 모던한 것이다’라는 생각 자체가 모던한 것이 아닌가요. ‘유일한 절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절대’와 ‘나의 절대’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지요.
▽김기〓절대란 이미 유일한 것인데 ‘다양한’ 절대가 가능하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군요. 더 큰 문제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인물인 D와 A의 사랑을 중세의 독실한 기독교인의 사랑이라는 거울에 비추어보았다는 겁니다. 이건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닌가요?
▽김현〓이 책은 해석된 역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료를 가지고 사고 훈련을 하면서 독자가 만들어 나가는 게임입니다. 시대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요.
▽김기〓그런데 엘로이즈와 아벨라르가 역사의 거울로 제시됐으면서도 마지막에 D가 A와의 죽음을 택하는 것을 보면 D는 실상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역사는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김현〓역사에서 배운다고 해서 역사를 그대로 본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사랑이라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처럼 사랑해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의 사랑을 보며 자신의 사랑을 반성하고 자기 나름의 사랑을 찾아갈 수도 있는 것이지요. 기본적으로 어떻게 읽는가는 독자의 몫입니다.
정리〓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