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원로 무용가 이매방 17,18일 '춤 대공연'

  • 입력 2001년 12월 11일 18시 51분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97호 ‘살풀이 춤’의 예능보유자인 원로 무용가 이매방(74). 춤으로 ‘인간 문화재’의 반열에 오른 이매방.

하지만 춤만으로 그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누군가는 “이매방은 춤 뿐 아니라 바느질과 욕에서도 인간문화재 급”이라며 “세 가지를 함께 이해해야 춤꾼 이매방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60여년간 춤꾼으로 살아온 그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외길 인생 이매방 춤 대공연’이 17, 1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다. 2년만에 열리는 대규모 개인 공연이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승무’ ‘살풀이 춤’과 자신이 창작한 ‘허튼 춤’ ‘보렴 승무’를 직접 춘다. 그의 아내 김명자(60)와 외동딸 현주(28)가 함께 공연하는 첫 무대이다.

그의 자택이자 연습장인 ‘우봉 이매방 전통보존회’에서 그를 만났다. 올해초 갑작스러운 발병이 있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작품 준비에 바빴다.

-지난 9월 고향인 목포에서는 첫 개인 공연을 가졌는데요.

“15세 때 명창 임방울의 목포 공연에서 다른 출연자가 빠져 엉겁결에 데뷔했어. 그 이후 목포 공연은 60년만이기도 하지만 개인 공연은 처음이야.”

-고향 공연이 늦어진 이유는.

“남자가 춤 춘다는 게 보통 일인가.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평생 고생하다 늙어버려 여유가 없었어.”

갑자기 이야기가 딴 길로 샜다. 순식간에 무용계 인사 10여명이 그의 욕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의 욕은 상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전라도 사투리에 실린 ‘걸죽한’ 단어들이 운율에 맞춘 노랫가락처럼 이어지며 듣는 이들을 빨아들인다.

-이번 공연에도 제자들의 무대 의상을 손수 만들었나요.

“얘들이 얼마나 잘 삐지는 데. 다 해 줘야지. 이번에도 40벌이야.”

그는 무대의상을 직접 만들어 입는다. 함께 출연하는 제자들의 옷도 일일이 그의 손으로 만들어 입힌다. 이에 대해 그는 “다른 것은 참아도 무대 의상이 잘못돼 춤이 망쳐지는 건 절대 못 참는다”고 말했다.

거실에는 이매방의 모친이 시집올 때 갖고 왔다는, 100년이 넘은 독일제 미싱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7세때 춤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식민지 시대 큰형이 사업을 하던 중국에서 경극의 대가 매란방(梅蘭芳)을 만나면서 일생의 전기를 맞았다. 평생 매란방처럼 살고 싶어 ‘규태’라는 본명을 버리고 ‘매방(梅芳)’이 됐다.

-다른 관심은 없었어요.

“어릴 때 여러 가지 배웠지. 가야금도 배웠지만 손가락 피부가 약해 힘들었고. 소리는 집안 대대로 목소리가 바닥이라 안 올라가. 그래서 춤이야.”

-이번 무대에 제자 100여명이 출연하는데.

“난 제자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도록 심하게 혼을 내. 그런데도 제자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나한테 ‘선생님’ 하고 부르며 찾아와. ‘상놈이 나이먹으면 벼슬한다’고, 나이가 인생을 가르치는 거야.”

그의 이야기는 일단 시작되면 막을 수가 없다. 그와 6촌지간으로 ‘목포의 눈물’을 부른 고 이난영에 관련된 대목도 있다. 이난영이 어린 시절 가수 된다며 경성(서울)에 올라간 대목을 말하다 ‘목포의 눈물’보다 ‘목포는 항구다’가 좋다며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하는 대목을 즉석에서 구성지게 불렀다.

-이번 공연에 젊은층이 많이 와야죠.

“우리 춤은 정중동(靜中動)인데 요새 춤은 정(靜)이 빠져 있어. 그래서 기계체조와 매스게임처럼 되는 거야. 젊은 이들이 이걸 알아야 할텐데.”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낼 계획은.

“내가 책 내면 무용계가 벌컥 뒤집어질거야. 일제 시대부터 남자 춤은 나 혼자 췄고 무용계의 산증인이니까. 하지만 생각 중이야.”

그는 인터뷰를 마치자 “내가 한 반찬인 데 괜찮으면 저녁을 들고 가라”고 했다.

‘성질 때문에 적이 많다’는 이매방. 거실에 있는 액자의 글씨는 이 춤꾼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무(舞)-마음이 고와야 얼굴이 곱다.

마음이 고와야 노래가 곱다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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