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아줌마도…아저씨도… "노래야 놀자"

  • 입력 2001년 11월 20일 18시 59분


▼손순남이 말하는 '가곡교실' "여기야 말로 열린 음악회"

“서초구 문화공보과의 의뢰로 처음에는 음악감상을 하는 ‘클래식 코너’를 진행했죠. 가끔 성악가들을 초청해 ‘살롱음악회’를 열었더니, 실제로 노래를 배워보고 싶다는 분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그야말로 열린 음악회죠. 객석에서 무대로 통하는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마라톤대회는 누구나 용기를 내 출전할 수 있듯이, 고급 문화도 누구나 마음을 열고 익히고, 남 앞에서 자랑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1

해가 짧아진 탓인지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11월의 목요일 저녁. 서울 서초구민회관 내 음악감상실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부지런도 하시네, 수원에서 오시면서, 한번도 빼놓지 않으시우?” “그쪽이야 말로… 발표 준비는 잘 됩니까?”

자리가 어느 정도 채워졌다 싶었을 때 구청 관계자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건강한 모습으로 뵙게 되니 반갑군요. 오늘도 손순남 여사를 소개합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 6시 서초구청이 진행하는 성악 실기강좌, ‘손순남의 가곡교실’가 열리는 현장이다. 기자도 난생 처음 노래 교실에 참가했다.

#2

“자, 먼저 몸을 풀겠습니다!”

30대로 보이는 직장인부터 70대쯤으로 보이는 신사까지, 일동은 깍지를 끼고 좌우로 돌리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유난히 흰머리가 많이 보이는 줄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일제히 옆사람의 어깨를 주물러주기 시작한 것. 일동은 몸이 녹신녹신하게 풀린 다음에야 ‘발성 자세’로 고쳐앉았다.

“높은 음에서 턱을 쳐들지 마세요! 코에 소리를 붙이세요!”

미미미미미… 마마마마마…. 배에 힘을 주고 열심히 소리를 내다 보니 학창시절로 돌아가 음악수업을 받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3

“오늘 배울 노래는 김효근 작곡의 ‘눈’입니다.”

반주자의 손이 피아노 건반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장바구니를 막 놓고 나온 것 같은 젊은 주부도, 머리에 서리가 내린 초로의 신사도 고개를 흔들며 악보에 몰입했다.

“자, 한페이지씩 불러보죠.”

조그만 산길에… 흰눈이 곱게 쌓이면…

“‘발자국을’ 뒤에 숨표 잊지 마세요!”

내 공상에 파문이 일어 갈길을 잃어버리오…

“소리 갈라집니다, 턱을 당기세요!”

기자는 허리를 너무 뒤로 쭉 빼고 앉았다고 주의를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개별 독창을 감상해야겠죠? 오늘은 희망자를 받지 않고 특별히 제가 지명하겠습니다.”

고운 인상의 초로의 부인이 앞으로 나섰다.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고운 소리! “성가대 활동 등을 꾸준히 해서 성악가 뺨치는 분도 많아요.” ‘선생님’의 나지막한 귀띔. 그런데 앞으로 나간 선생님이 뜻밖에 기자를 지목했다.

“저기 코트 입은 분 나와보세요. 오늘이 처음인 것 같네요.”

기자는 선생님으로부터 ‘낮은 소리부터 높은 소리까지 무리가 없다’는 칭찬을 먼저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좀더 초점잡힌 소리를 내실 수도 있겠는데요”라는 ‘따끔한’ 충고가 이어졌다.

#4

가곡교실의 선생님 손순남씨(41)는 미국 피츠버그 듀케인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프로 성악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가곡교실’처럼 사회와 접촉하며 음악을 알리는 일이 더 재미있다고 한다. 1999년 말 처음 문을 연 ‘가곡교실’은 매년 두학기씩 다섯 학기를 마쳤다. 매회 50∼70명이 참여하지만 한 학기를 마치고도 졸업을 ‘거부’하는 수강생이 많아 정확한 배출인원은 불명.

이번 학기에는 수강생 발표회도 준비중이다. 12월20일 서초구민회관에서 15명 정도가 출연하는 음악회를 연다.

문을 나서는 기자의 머릿속에 문득 한 음악평론가의 ‘명언’ 이 떠올랐다.

“축구 경기를 구경만해서는 몸이 튼튼해지지 않는다. 음악도 감상만 하는 것보다 실습의 기회를 갖는 게 좋다.” 문의 02-570-6410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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