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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2월 20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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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앞 한 건물의 2층에 자리잡은 한국화가 문봉선(文鳳宣·40·인천대 교수)의 화실은 젊은이들이 흥청거리는 바깥과는 대조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 묵향(墨香) 가득하다. 작은 공간 한쪽에 붓 먹 등 문방사우(文房四友)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대나무를 그린 수묵화 한 점이 벽에 걸려 있다. 우리 전통화법을 바탕으로 수묵화의 현대화에 앞장서고 있는 그의 작업 현장이다.
“우리 문화가 세계화 미국화를 좇아가다 보니 정신적인 면에서는 너무 피폐해진 것 같아요. 저는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우리의 고전에서 정신적인 맥을 찾아내 그것을 계승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한국화가들이 먹 외에도 유화나 아크릴 등 채색 물감을 쓰는 것이 일반화돼 있지만 그는 모름지기 지필묵(紙筆墨)에 승부를 걸고 있다.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그도 한때 아크릴 물감을 쓰기도 했으나 이내 ‘순수 묵(墨)’의 세계로 돌아왔다.
먹의 농담과 여백으로 그리는 수묵화만이 한국화의 전통을 이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99년 12월 서울 학고재화랑에서 가진 수묵화 개인전 ‘섬진강, 붓길따라 오백리’는 전통운필의 기개와 청량함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그는 섬진강 굽이굽이 돌아가는 물길과 자연을 파노라마 식으로 폭 90cm 길이 22m의 대형 그림으로 펼쳐내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는 이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최근 선미술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전통 수묵의 정신을 잘 이어가라는 격려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추상성을 띠면서도 문인화 정신을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그가 올 한해 동안 작업을 계속해 내년 3월경 선화랑에서 열릴 선미술상 수상전시회에서 어떤 작품들을 보여줄지 화단의 관심을 모은다.
그가 올해 계획하고 있는 또 하나의 큰 일은 제대로 된 한국화 교과서를 만드는 일. 지금 나와 있는 책들은 중국과 일본 책을 편집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우리의 산하와 자연을 그리는 데는 맞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요즘 수시로 전국을 다니며 우리의 산과 나무와 바위를 화폭에 담고 있다. ‘자연과 그림’ 이란 이 책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