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서 남극까지]도전 위험 극기 "나는 다시 태어났다"

  • 입력 2001년 1월 31일 18시 37분


▼위험한 여정▼

극지방을 제외하고 대륙을 종단하는 길은 자전거를 이용했다. 캐나다 북부 유콘주 뎀프스터(Dempster) 고속도로에서 시작된 자전거 여행은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도, 허리에 매어 끌고 다녀야 했던 무거운 배낭 썰매도 없었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이 항상 우리를 긴장시켰다.

캐나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이던 2000년 6월말경이었다. 나는 그 날 약간의 오르막이 있는 한적한 산악도로 부분 50km를 맡았다. 교대 지점에 거의 다 도착해 물 한 모금 마시기 위해 멈춰 섰던 나는 경악을 했다. 전방 70여m쯤 되는 지점에 커다란 흑곰 한마리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온 몸이 굳는 것 같았다. 도망치는 수밖에 없는데...참, 곰의 최고 속도는 시간당 50km라고 했지, 하지만 내 자전거 최고 속도는 40km에 불과한데...등줄기가 오싹했다.

그 순간 ‘빵∼빵∼’ 자동차 경적소리가 났다. 다음 대원과의 교대를 위해 내 뒤에서 천천히 따라 오던 탐험대 캠핑 차량이었다. 그제서야 흑곰은 움칠하더니 서서히 뒷걸음을 했다. 그리고는 숲속으로 달아났다. 앞서가던 내 모습이 인적드문 산악의 숲속으로 난 길로 접어들어 안보이자 걱정이 되어 서둘러 뒤쫓아온 대원들이 아니었다면... 내 생전 5분동안 그렇게 많은 생각을 동시에 했던 적이 없었다.

미국을 여행하던 7월경에는 캐나다 대원 딜런 스펜서(23)가 자동차가 많이 달리던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갓길이 좁아지면서 도로 쪽으로 붙으려다 달려온 자동차와 정면으로 부딪쳐 10여m나 퉁겨져 나간 것. 머리 입술 코 등은 물론 다리와 어깨 등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지만 딜런은 놀라운 정신력으로 통증을 이기고 이튿날 여정을 거뜬히 해냈다. 딜런의 사고와 그것을 이겨나가는 그의 놀라운 정신력은 다소 지치고 긴장이 풀려있었던 우리에게 다시금 힘을 솟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향수▼

가족과 떨어져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만 만나는 시간이 길수록 견디기 힘든 향수가 밀려왔다.

7월초 탐험대가 북극과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도착했을때 미국인 대원 제시카 카자스(20·여)와 하이디 하우먼스(20·여)의 친척들이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아들을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 보내고 속앓이를 하던 데블린 포그(23·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어머니는 이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을 정도였다.

나가봐야 집의 소중함을 안다던가. 비록 미국땅 낯선 친구집이었지만 집에서 직접 만든 따스한 저녁식사를 받아드니 식구들 생각이 간절해졌다.

▼남극점을 향해▼

2000년 12월3일 남극점 여행의 출발지인 패트리어트 힐에 도착했지만 날씨 때문에 도저히 출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틴 윌리엄스(55) 탐험대장과 우리 청년탐험대원 8명은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남극점 도착시간은 2000년 12월31일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출발이 늦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더 강행군을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처음 북극을 출발할 때 예정했던 남극점 원정 출발날짜는 11월22일경.

나도 다른 팀동료들처럼 침착한 척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4월에 했던 북극탐험의 경험을 통해 지구끝에서 만나는 ‘추위’ ‘눈보라’ ‘동상’ 등이 어느 정도로 가혹한지 잘 알고 있는터라 본능적인 두려움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라!’ 마틴 대장의 명령이 떨어진 것은 12월18일. 12일간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350여km. 아무리 강풍이 불어도 무조건 30km는 나아가야 한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일직선으로 대열을 짰다. 이미 북극에서의 경험이 있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남극의 날씨는 생각보다 더욱 추웠다. 북극에서보다 온도는 5∼10도는 더 낮았다. 더구나 당시에는 갈수록 따뜻해지지만 이번에는 갈수록 추워지고 바람도 우리의 진행방향과 정반대로 불어닥쳤다.

하루 10시간에서 13시간에 이르는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선글라스 없이는 볼 수 없는 새하얀 지평선과 24시간내내 지평선과 수평으로 움직이며 지지도 않는 태양뿐.

일주일 후 팀동료들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메르세데스 로자우어(27·여·아르헨티나)는 발에 물집이 심해 서있기도 어려운 상태였고, 이시카와 나오키(21·일본)의 얼굴은 동상으로 검게 변해버리고 있었다.

12월24일 가족들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마음씨 고운 하이디 하우먼스(20·여·미국)가 미리 팀동료들의 가족들에게 E메일을 보내 크리스마스 카드와 E메일을 남극으로 출발전에 받아 놓고는 우리를 놀래준 것이다. 내가 받은 A4용지에는 아버지 어머니 누나의 격려 E메일이 빼곡이 적혀있었다.

눈물이 나왔지만 참았다.‘힘을 내라고 준 편지를 보고 눈물을 보이면 안되지.’

크리스마스 편지는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우리들 모두 ‘5일간 참으면 이 여행은 끝난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발을 움직였다. 눈보라가 심해 앞을 볼 수 없을 때는 고개를 숙이고 무조건 앞사람의 스키가 지나간 자리만 따라갔다.

출발한지 12일째 저 멀리서 사람들의 움직임과 1.5m길이의 장대가 눈에 들어왔다. 장대가, 저 장대가 우리의 목표점인 남극점. 바로 그곳이었다.

▼알을 깨고 나와▼

나는 요샛말로 전형적인 N세대다. 간섭받는 것은 싫고 환경이니 봉사니 하는 큰 문제보다는 ‘재미와 흥미’가 우선이다. 99년 12월경 내가 ‘극에서 극으로 2000(Pole to Pole 2000)’행사 한국대표로 언론에 알려졌을 당시 많은 사람들은 나를 ‘환경과 봉사활동에 적극적인 대학생’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탐험대에 참가했던 이유는 그저 ‘재미와 모험’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 지금, 나는 감히 내가 변했음을 느낀다. ‘나만을 위한 꿈’이 아닌 ‘나와 너 모두를 위한 꿈’을 꾸고 있던 동료들과 NGO 관계자들,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작은 걸음(A small step)’들을 끝임 없이 찾아내고 실천하려 했던 외국 젊은이들의 의지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고등학교시절 가출을 일삼던 문제아였다. 부모님이 하라는 일은 무조건 거부했다. 그러나 알고보니 나만이 상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낮의 힘든 여정을 마치고 밤에 대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각자의 상처를 확인하고 감싸안았다. 5년전까지만 해도 마리화나 등 환각물질에 찌들어 살았던 르노 리처드(25·프랑스), 아버지의 자살 이후 자신도 자살 방법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딜런...모두 또다른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극에서 극까지 2000(Pole to Pole 2000)’ 활동을 국내 차원에서 해볼 생각이다. 우선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을 모은 뒤 함께 자전거로 국내를 돌며 봉사활동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전해줄 예정이다. 성인이 된 뒤 처음으로 나와 너를 위해 세운 작은 꿈을 조금씩 실천하는 것이다.

참,‘극에서 극까지’행사 기획사인 어드벤처 네트워크 인터내셔널사는 이 행사의 내년 참가자를 올 여름 또 모집한다고 한다. 관심있는 분들은 office@pole2pole2000.com으로 연락하시기를. 동아일보 독자 여러분 파이팅!

<정리〓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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