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를 수놓은 말말말]'바꿔' '반갑습네다' '러브' 등

  • 입력 2000년 12월 29일 18시 47분


바꿔, 반갑습네다, 삼행시, 난 공짜가 좋아, 러브, 반토막…. 새천년 첫해는 정말 ‘엽기(獵奇)적’이었다. 한해 동안 유행했던 키워드들을 엮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모자이크해본다.

가수 이정현의 히트곡 ‘바꿔’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 로고송으로 불리면서 정치권에 ‘바꿔 열풍’을 가져왔다. 일본 총선에까지 바꿔 열풍이 일었을 정도. 바꿔 패러다임에 대한 기존 정치권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홍위병’과 ‘2중대’ 논쟁이 그것.

남북 정상회담 성사로 ‘반∼갑∼습네다. 반갑습∼네다’라는 북한 어린이들의 노래가 방송 전파를 타면서 ‘반갑습네다’라는 유행어가 생겼고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거침없는 어투와 행동을 빗댄 ‘광폭정치’ ‘통큰정치’라는 단어도 신문 지상을 오르내렸다.

올 한해 우리 사회를 휩쓴 유행어 중 으뜸은 엽기. 30대까지 “정말 엽기적이군”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 정도. ‘괴이한 것에 흥미가 끌려 쫓아다니는 일’이란 사전적 의미보다는 발상의 전환, 주류의 전복, 발랄한 일탈 등의 복합적인 뜻을 담고 있다.

엽기의 화신이 테크노 뽕짝 가수 이박사(본명 이용석·46)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이 별로 없을 듯하다. 관광버스 안내원 출신인 그는 촌티의 극치를 달리면서도 중장년 층은 물론 테크노 시대의 신세대로부터도 박사 대우를 받고 있다. “아버지! 난 누구예요” “난 공짜가 좋아” 등의 촌스러운 CF도 비슷한 사례.

삼행시 하나, ‘여자애’. “여보세요, 자기야, 애비다.” 현대성과 첨단을 비꼬는 듯한 삼행시는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과 인터넷 사이트를 달궜고 대다수 국민을 ‘패러디 시인’으로 만들었다. 이행시도 많다. 지네. “지네야∼. 네!”

경기 고양시 일산 신도시 주민들이 벌인 러브호텔과의 전쟁 중 나온 에피소드. 고성(古城)을 촌스럽게 본떠 만든 러브호텔을 본 아이들이 “아빠, 저 궁전은 뭐하는 데야?”라고 짐짓 진지하게 묻자 아빠의 대답. “음. 어른들 놀이방이야.”

황교선 고양시장의 ‘러브론’도 ‘엽기적’이었다. “그 가수도 러브하니까 러브를 했겠지. 건전한 러브는 반대할 수 없지만 미풍양속을 해치는 러브행위는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말한 뒤 러브는 일산의 ‘일상적 코드’가 됐다.

한가지 더. 연예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담은 비디오가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는 와중에 ‘풀버전’이 유행했다. 백지영 풀버전, O양의 모든 것, 미스코리아 투시사진 등…. 그러나 실제 이들 엽기 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실소. 예컨대 풀버전은 문구점에서 파는 풀에 백지영 이름을 넣은 것이다.주식투자자들에게는 ‘반토막’이면 성공이었다. 원금의 반의 반 토막, 반의 반의 반 토막으로 손해를 보고 남몰래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많았기 때문. 실제 올해 종합주가지수는 504.62로 지난해 말(1028.07)의 반토막 수준으로 마감됐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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