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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2월 25일 01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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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에 쓰여진 두번째 시집 ‘귀촉도(歸蜀途·1948)’는 인간의 슬픔이 주조를 이룬다. 문학평론가 남진우는 “그의 초기 시는 프랑스 상징주의와 우리 고유의 서정이 뒤섞여 만들어진 합금”이라고 평가한다.
6·25전쟁 이후 그는 차츰 안정을 찾으면서 동양화풍의 섬세한 내면세계를 추구한다. 1956년 펴낸 ‘서정주 시선’은 초기 시의 열정이 한 차원 높게 승화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시 ‘국화 옆에서’는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며 한층 차분하고 탄탄해진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1960년대 들어 시인은 시집 ‘신라초(新羅抄·1961)’를 시작으로 ‘신라’가 대표하는 전통적 정서에 탐닉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그는 샤머니즘과 유교, 노장사상 등 폭넓은 동양사상을 탐구하며 초기부터 이어져온 윤회 사상과 인연설에도 눈을 돌린다.
1970년대에 미당은 고향 질마재의 유년 시절로 회귀하여 또 다른 시 세계를 개척했다. 1975년 펴낸 시집 ‘질마재 신화(神話)’에서 시인은 전통적인 ‘이야기꾼’으로 변모하여 촌락 사회의 일상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을 발굴했다.
1980년대 정치적 굴곡 속에서도 끊임없이 시를 창작한 그는 세계 여행의 체험과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1990년 ‘산시(山詩)’ 창작에 착수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세계의 산 이름을 소재로 산의 상징과 의미망과 이미지를 형상화한 시집 ‘세계의 산시’(1990). 청년기부터 간직해온 신화적 상상력은 이 시집에서 세계 각국의 지리와 민화 전설로 지평을 넓히게 된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