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韓-日 '35.6㎝ 고구려 나무자' 진위 논란

  • 입력 2000년 12월 17일 19시 48분


지난 7월 경기도 하남시 이성산성에서 발굴된 35.6㎝짜리 나무 자(尺) 하나를 놓고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이 자존심 대결을 펼쳤다.

문제의 이 자는 ‘처음 발견된 고구려 자’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발굴 당시 고고학계와 역사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과연 이 자가 고구려 시대의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 자의 실체 규명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16일 서울 신촌 고구려연구회 회의실에서 열린 학술세미나 ‘고구려 자 연구’.

이것이 고구려 자가 틀림없다고 보는 한양대박물관의 유태용 연구원. 이 자를 직접 발굴한 그는 “그동안 고구려 자의 1척이 35∼36㎝일 것으로 추정했으나 이로써 정확히 35.6㎝라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환상의 자―고구려 자는 없었다’라는 책을 출간한 일본의 아라이 히로시(일본금속공업 고문)는 고구려 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이성산성 출토 고구려 자는 눈금 등이 부정확해 자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주장. 그는 자비(自費)로 이번 세미나에 참석했을 정도로 고구려 자 ‘공격’에 적극적이었다.

조심스러운 견해를 보이는 한국측 학자도 있었다. 도량형 전문가인 이종봉 박사. “실물이 발견됐기 때문에 고구려자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의문이 있다. 삼국시대 이전엔 중국에서도 길이 35.6㎝의 큰 자가 사용된 예가 없었고, 이성산성에서는 당척(唐尺)도 발견되었는데 한 곳에서 단위가 다른 두 개의 자를 사용했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이 유물이 고구려 자가 틀림없다면 한국 고대건축과 도량형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35.6㎝ 짜리의 나무 자 하나에 학계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날 세미나에선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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